갑자기 ‘글태기’가 찾아온다면? …”잠시 쉬자”

91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설렘은 사라지고 만사에 시큰둥한 권태기가 찾아오듯 글쓰기도 ‘글태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제는 쓰고 싶은 글도 없고, 그 문장이 그 문장 같고, 내 이야기는 뻔하고. 글 한 편을 완성한 뒤에 느끼던 뿌듯함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무슨 글을 써도 시큰둥하다면 글태기를 의심해봐야 할 때.

한 해 동안 두 권의 소설집을 냈더니 이제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던 적이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좋아하는 일인데, 잘하고 싶은 일인데 왜 지금은 하고 싶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이 하기 싫어지면 자책을 하게 된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잖아, 그러면 더 열심히 해야 맞는 거잖아. 채찍질하느라 바빠서, 거리를 두고 내 상황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런데 ‘열심히’도 시작할 때나 가능하지 매번 같은 강도로 열심히만 했다가는 죽어 나가기에 십상이다. 문보영 시인은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에서 자기 자신을 ‘하다가 그만둘 줄 알았는데 계속하고 있네…’형 인간이라 칭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번아웃되지 않고 최선 직전에서 어슬렁거리며 간 보기.’를 실천하고 있다는 어느 시인의 태도처럼 글쓰기 역시 아예 질려버려서 손을 떼지 않도록 때로는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권태기가 왔다면 혹시 그간 내가 천천히 분배해서 써야만 했을 에너지를 지나치게 짧은 기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끌어 당겨와서 썼던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열심’에도 엄연히 사람마다 정해진 총량이 있는 법이니까.

 

장르와 시점을 바꿔보기

완전히 다른 장르의 글을 써보는 것 또한 권태를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내 이야기를 소재로 한 에세이만 매일 쓰다 보니 지겹다면, 내가 아는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한 짧은 소설을 써보거나, 혹은 내 이야기를 소설처럼 써보는 것 또한 시들하게 말라버린 마음을 복구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1인칭 ‘나’를 화자로 한 에세이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뻔히 아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괴로워질 수 있다. 그럴 때 ‘나’를 3인칭 화자인 ‘그/그녀’로 바꿔서 쓰기만 해도 색다른 글을 쓸 수 있다. 강민선 작가의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에는 이러한 방법으로 작가의 이야기를 마치 소설처럼 쓴 글이 수록되어 있다. ‘나’를 ‘그녀’라는 주어로 치환해서 쓰기만 해도 나에게 벌어진 일을 객관화해서 사건을 재구성해 볼 수도 있고, 자기연민이나 혐오와 같은 격정적인 감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자기중심적인 면모도 탈피할 수 있다.

내 이야기를 소설처럼 써보면 더 솔직해질 수도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화자로 내세우는 것만으로도 “이런 얘기도 해도 될까.”라는 검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름만 다르게 붙인 주인공 뒤에 숨어 내 이야기를 대신 하게 하는 일이 비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적확한 표현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글 앞에서 솔직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볼 수밖에. 필요하다면 나를 닮은 캐릭터를 앞세워 내 이야기를 몰래 흘리는 연습부터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