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_참을 수 없는 이불 킥의 중독

늦은 새벽,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다.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을 이 시간, 나는 ‘이 짓’을 시작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만료 없는 부끄러움과 회한이 밀물처럼 몰려드는 이 시간. 바로 ‘이불 킥’의 시간이다. 이 시간이 시작되면 안락함을 위한 침대는 이내 처절한 고해성사의 장이자 원맨쇼의 무대가 된다. 사연도 다양하다. 일 년 전의 나는 왜 그랬는가, 나는 그때 그 말을 왜 했는가, 나는 그 일을 왜 더 잘 해내지 못했는가, 나는 그런 놈을 왜 만났던가 등등 말하자면 끝도 없다. 이불을 돌돌 말았다 걷어차기를 반복하며 소리 없이 부르짖는다. ‘돌이키고 싶다! 없었던 일로 하고 싶다! 그럴 수 없지만 그러고 싶다!’ 하지만 분하게도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불 킥을 부르는 과거는 기억에만 머물지 않고 기록으로도 남겨진다. 이 남부끄러운 증거물들은 곳곳에 널려있다. 대표적으로는 졸업앨범이 있다. 특히 중학교 졸업앨범이 가장 난처한데, 그 시절의 나는 볶다 태워 먹은 콩같이 새까맣고 촌스럽다. 지난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SNS도 문제다. ‘6년 전 오늘입니다’라며 불쑥 튀어나오는 사진과 글귀들은 너무나 감성적이어서 차마 내가 작성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분명 내가 남긴 흔적이다…). 누군가와 주고받았을 해묵은 편지들과 메시지들도 낯 뜨겁긴 마찬가지다. 살아생전 ‘디지털 장례를 꼭 치러 달라’는 유언을 작성해놓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려해봄 직하다.

개중에서도 가장 곤란한 과거의 흔적은 바로 ‘원고’다.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은 이후, 나는 줄 곳 다양한 ‘이불 킥거리’들을 만들어오고 있는데 그 종류가 참으로 다양하다. 소설, 에세이, 짧은 글, 긴 글, 쓰다 만 글, 초고로 남겨진 글, 마감에 쫓겨 완성하고 게시까지 했지만, 여전히 ‘후진’ 글 등등… 그 정도만 조금 다를 뿐, 모든 글이 낯 뜨겁게 느껴지기는 매한가지다. 김연수 작가는 자신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통해 ‘초고를 공개한다는 것은 마음먹고 팬티를 내린 채 대중 앞에 나서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과거의 원고들을 들여다볼 때 나도 그와 필적하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또 하나의 원고를 쓰고 있다. 즉 ‘이불 킥 거리’를 만들고 있다.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놀랍게도 ‘여러분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써보세요’라는 메시지다. 그 모든 낯 뜨거움에도 아랑곳하지 말고 ‘자발적인 이불 킥을 해보시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두 달 가까이 ‘독서’에 대한 글을 연재했다. 오늘까지 총 10편의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변함없이 책을 읽는 행위를 비롯해 그와 관련된 모든 순간이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노라고 고백했다. 변화의 과정은 은밀했지만 놀라웠고, 나는 이 기꺼운 활동을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독서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연재를 마무리하는 이 순간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글쓰기’가 ‘독서’만큼이나 삶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기 때문이다. 

“생의 모든 계기가 그렇듯이 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 …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려 애쓰는 ‘삶의 옹호자’가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글 쓰는 일이 작가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선택하는 최소한의 권리이길 바란다.” _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중

과거의 서툰 기록들을 읽으며 느끼는 낯 뜨거움은 앞으로도 영영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한밤중의 격렬한 이불 킥이 한평생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끄러움의 댓가로 세상의 모든 것에 제대로 감응하고, 일상의 빈곤을 넘어서며, 자기만의 언어를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읽고 쓰는 행위를 지속할 것이다. 

“텍스트 이전의 내가 있고, 이후의 내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독서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다.“ _정희진

 -지금까지 ‘공백의 독서 에세이’를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댓글

  1. 저는 과거에 친구 생일선물로 인소를 A4용지에 써서 선물한 적이 있었고, 더 어렸을 때 그림과 글이 같이 들어간 책을 만들었었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하지만 안타깝게 증거물들이 남아있지 않아서 아쉬우면서도 저 또한 오글거림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 아직은 글쓰기가 익숙치 않아 SNS에 짧은 독서기록을 남기는 것부터 조금씩 글쓰는 분량을 늘려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잘 읽고 잘 쓸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독서활동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 공백님의 독서 에세이 10편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고 공감도 가며 즐겁게 읽었어요 🙂 다음 글은 어떤 내용인지 너무 궁금하네요 다음 글 기다릴께요 공백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