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정리 안 된 ‘국가부도의 날’

12월은 보통 한해를 정리하면서 다가오는 한해를 계획하고 준비하게 하죠. 2018년도 한해를 장르로 정의한다면 어떤 장르일까요? 오래전이지만 1997년도를 기억하신다면 어떤 해로 기억하시나요? 관련이 없는 두 시기를 엮은 영화가 바로 <국가부도의 날>입니다. 올해의 끝에서 <국가부도의 날>은 정리되지 못한 90년대를 마무리하고 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1997년 ‘IMF 사태’에 대해 비통하게 말하는 9시 뉴스 앵커들의 모습을 영화처럼 보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러다 2018년 불안하게 나라 경제가 망하는 과정을 겪은 이야기를 영화로 보게 되었습니다. <국가부도의 날>은 사회드라마 장르로 IMF 사태에 대해 다루고 있는 영화죠. 사회드라마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비극적으로 그려내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드라마 장르 중 하나입니다.

영화는 국가 부도가 확정되기 일주일 전, 각자의 위치에서 국가부도의 상황을 막으려는 사람(한시현), 국가 부도의 상황을 예측하고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사람(윤영학),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휩쓸리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갑수)의 이야기로 구성돼요. 비슷하게 미국의 경제위기를 다룬 <빅쇼트>나 바이러스 재난 영화 <컨베이젼> 떠오릅니다.

<국가부도의 날>은 각자가 담아두던 이야기들을 모두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IMF가 도입되는 과정, 국가부도의 정황에 대해서 정확한 몰랐던 부분을 차분하게 보여주려는 노력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국가부도의 날>은 어느새 ‘나도 그랬지’라며 자신의 경험담으로 흘러가 영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정규직이 사라지고, 명예퇴직이 늘었고, 연쇄작용처럼 치킨집이 늘었고, 자영업을 하다가 폐업을 한 사람들이 다시 비정규직이 되는 악순환의 구조. 불안한 고용 구조 속에서 연속 도산, 금리 인상이란 나라 경제가 무너지는 과정이 지켜보게 되죠. 이 과정은 도미노처럼 일어나서 관련이 없을 것 같던 우리 주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집이 망해서 가족이 흩어지거나, 친구의 집이 망해서 친구가 갑자기 사라지는 경험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겁니다. 가정이 붕괴되고, 가족이 해체되는 사연들 속에서 IMF 사태는 시대의 아픔이나 책임이 아니라 개인사가 되어버리죠. 결국 개인의 파산은 개인이 책임지지만, 기업의 도산은 나라에서 책임지는 역발상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우리는 IMF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겪어야만 했습니다.

97년 이전과 이후의 세대는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할 수 없게 된 첫 세대가 아마도 지금의 30대일 겁니다. 그러나 지금의 10대, 20대에게는 IMF란 마치 30, 40대에게 88년 올림픽처럼 먼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죠.

그렇다면 이 영화는 과거를 말할 뿐 현재에 효용이 없을까요?

이 영화는 1997년 그때로 끝난 일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는 걸 2018년도의 에필로그 장면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 덕분에 여전히 현재의 이야기로 와닿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장면을 하나 고르자면 갑수가 전화를 거는 장면입니다. 1997년도와 2018년도에 갑수는 각각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겁니다. 첫 전화는 1997년도 갑수가 거래처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어음 결제를 해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이죠. 갑수는 거래처 사장에게 고마워하며 어음을 결제해주겠다는 말을 하지만, 남은 것은 부도 어음뿐입니다. 다음 장면에서 거래서 사장님 장례식으로 이어지면서, 갑수가 전해준 부도 어음이 거래처 사장의 죽음과 연관될 수 있다는 암시로 끝납니다. 결국 갑수는 살아 남기 위해서 국가와 거래처에서 당한 것처럼 자기를 믿어준 사람의 등을 치고 만 거죠.

이어지는 2018년 에필로그 장면에서 갑수는 역시 전화를 겁니다. 면접 보러 가는 아들에게 전화를 거는 아버지 갑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빨리하라고 다그치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재촉하는 질문에 익숙하게 대답합니다.

“아무도 믿지마”

순진하게 믿어서 당하던 갑수는 믿지 않아야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게 바로 갑수의 인생 지론이 된 거죠, 씁쓸하지만 낯설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도 언제가 본 우리 부모의 모습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한번쯤 부모님에게 자라면서 들었던 말이자, 우리들 마음속에도 있을 법한 말은 아닐까요?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우리에게 1997년도 과거의 끝난 이야기란 의미를 넘어서 한 시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영화입니다. 1997년도는 사회드라마의 해로 기억될 수도 있겠네요. 여러분의 1997년은 어떤 장르의 한 해 기억되나요? 2018년도는 어떤 장르의 해로 기억에 남을까요?

저의 1997년은 성장 멜로 드라마였고, 21년이 지난 지금도 내용은 다르지만 여전히 성장 멜로 드라마의 어딘가네요.

조민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