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분실 ‘흑역사 지우고 재탄생’

스토리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던 수많은 학생이 고문을 당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리는 장소로 다시 태어납니다. 2005년부터 경찰청 인권센터로 이용돼 왔던 대공분실의 관리권을 이제는 행정안전부가 넘겨받아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설립하기로 한 건데요. 인권 탄압의 상징이었던 대공분실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꽤 많은 고문 피해자와 희생자 유가족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26일 이관 행사가 열린 대공분실을 찾았습니다.

좀 더 자세히…

“민주주의 만세!” “남영동 대공분실을 국민의 품으로!” 시민들의 만세삼창이 끝나자 굳게 닫혔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철문이 열리는 것으로 이관식 행사는 막을 올렸습니다. 행사에는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김갑룡 경찰청장을 비롯한 시민 사회 인사(고문 피해자, 희생자 유가족 등) 약 150명이 참석했는데요. 민갑룡 경찰청장 15만 경찰을 대표해 지난날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기고 공분을 일으켰던 뼈 아픈 경찰의 과거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했고, 이낙연 총리는 “영령들의 헌신 위에 대한민국이 서 있고, 그 희생 덕에 지금 저희가 자유롭게 숨 쉬고 있다”며 고문 희생자들을 기렸습니다.

대공분실 이관은 과거 경찰청 산하의 대공 수사기관으로 온갖 고문들이 이뤄졌던 대공분실을 국가 폭력의 주체였던 경찰청 소속 인권센터로 계속 운영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시민들의 지적에, 문재인 대통령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발표한 데 따른 조치입니다.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그날의 역사

남영동 대공분실은 지금 경찰청 전신인 치안본부가 1976년 10월 설립한 대공 수사기관인데요. 3평 남짓한 규모의 조사실로 가득한 대공분실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민주화 운동을 했던 학생들에 대한 고문이 자행됐습니다. 1987년 당시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 열사가 참고인 진술을 명목으로 연행돼 대공분실 509호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하게 되면서 그 해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곳이기도 하고요. 현재 젊은 친구들 눈엔 그저 작은 관공서로 보였을 대공분실이 사실 부조리했던 특정 시대를 상징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던 겁니다. 

조민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