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악몽”…평양에서 대체 무슨일이

평양 남북축구, 이런 말 저런 말

“한마디로 기이하고 악몽 같았다“
카타르월드컵 축구 아시아 2차예선을 평양에서 치르고 온 축구협회 관계자나 선수들의 뒷소감들을 들어보면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관중도 없고 중계도 없고 그리고 승부도 0대0으로 결과가 나온 이 경기를 두고 ‘황당한 3無 경기’ 라는 별칭까지 생겼습니다.

선수단은 경기를 하루 앞둔 14일 오후에 비행기로 베이징을 거쳐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했는데요. 복잡한 입국 수속 절차로  3시간이나 공항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양에서 경기를 치르고 북한 땅을 빠져 나올 때까지 경기와 훈련 때를 빼고는 호텔에만 머물러야 하는 사실상 감금된 채로 지내야 했고요. 자신의 휴대 전화도 가져 가지 못했고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도 거의 제공 되지 않아 깜깜이 생활을 하다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사진 대한축구협회>


가져간 음식재료 압수 : 보통 국가 대표 선수들이 해외원정 시합을 갈 때면 전문 요리사와 함께 한식 재료와 기타 고기나 해산물 등 재료들을 준비해 가는데요. 이번에도 역시 3박스 분량의 메인 요리 재료를 가지고 갔습니다. 근데 공항에서 다 압수당했습니다.  사전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인데요. 선수들은 결국 묵고 있던 고려호텔에서 만들어준 음식만 먹었습니다.


입국 심사만 3 시간 : 선수들은 자신들의 가방에 싸가지고 온 소지품들을 모두 직접 적어 제출해야 했습니다. 또 제출된 서류도 ‘이게 틀렸다’  ‘저게 틀렸다’ 하면서 여러 번 다시 써야 했고요.  3시간의 실랑이를 거친 후에 공항 밖을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선수들은 진이 다 빠졌고요.  어두울 때 한국 선수들을 이동시켜 북한 인민들과의 접촉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설마 관중이 없을 줄이야 : 경기가 치러진 15일 저녁, 우리 선수단이 평양 경기장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관중이 한사람도 없다고는 아무도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날 남북 매니저급 미팅에서도 관중들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오고 갔고요. 선수단이 경기장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 만해도 군인이나 경비원들이 줄을 서 있어서 관중이 많구나 이렇게 생각했다는데 막상 아무도 없었다는 거죠.  4만 명의 열렬 응원에 대비했던 우리 선수들은 오히려 더 허탈해 했습니다.


“이게 축구인지 모르겠다” : 경기가 시작하자 북한 선수들이 매우 거칠게 나왔는데요. 통상 국가 대표간의 축구 경기야 거칠 수 밖에 없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레드 카드가 몇 차례 나올 만큼의 심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급기야 북한 선수가 우리 황인범 선수를 가격해서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남북 선수들이 뒤엉켜 있는 것을 손홍민 선수가 말리고 있다.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 트위터 >

양 팀 선수들이 한데 엉켰지만 손홍민 북한의 리영직 선수가 나서서 겨우 말렸습니다. 손 선수는 경기 중 입에 담긴 어려운 욕설도 들었다고 말했네요. 아무도 안다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할까요?

고려호텔 감금 : 선수들은 2박3일 평양에 머물면서 경기나 훈련 등 공식 일정 이외에는 호텔 밖으로 전혀 나가지 못했습니다. 호텔 직원들도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우리 선수단 질문에 답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는 사용할 수 없었고요. 호텔 측으로부터 겨우 랜선을 제공받아 매우 느린 속도지만 대표팀 소식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나마도 북측 관계자들이 그 내용들을 뒤에서 모두 확인했다고 하네요.

<평양의 고려호텔 외관>


“기묘한 유령 경기” : 외신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평양의 빈 관중석 앞에서 기이한 경기가 벌어졌다”고 했고요. 영국 신문들도 “중계방송도, 팬도, 골도 없는 비밀스러운 경기”라고 보도했습니다. 일본 NHK는 “최근의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반영했다”는 평을 내놨네요.


“여러 사람 목숨 살려” : 귀순한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공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한국 사람들을 격분 시켰지만 여러 사람 목숨을 살린 경기”라고 했습니다. “만약 북한이 축구에서 졌다면 북한 체육관계자나 선수들이 그 책임을 벗어 날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무승부가 됐기 때문에 북한 선수단도 살고 한국 대표단도 살린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만약 한국이 이겼다면 손홍민 선수 다리가 하나 부러지든지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녹화중계도 없다 : 지상파 방송들은 경기 다음날 17일에 녹화중계를 하겠다고 예고했었습니다. 그러나 남측 방송사를 대표해서 KBS가 북측과 협상을 벌였는데 방송을 하지 않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뚜렷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는데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북한으로 DVD 형태의 영상을 받긴 했지만 화질이 매우 나빠 방송할 정도가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월드컵 대표팀의 경기가 나중에 녹화중계 조차 못한 경우도 전 세계적으로 초유의 일이라고 하네요.

조민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