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안 했으면 범죄’ 동의하시나요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도 강간으로 인정하자.’ 12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발의한 성범죄 처벌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입니다. 여성 의원 10여명도 뜻을 같이했어요. 지금까지는 ‘폭행이나 협박’을 통해 성관계했을 때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었는데요. 앞으로는 상대의 동의를 받지 않고 성관계를 했을 때도 강간죄로 처벌하자는 거예요. “2020년에 걸맞은 법이 생겼다”라는 찬성과 “관계 후에 상대가 합의 안 했다고 우기면 어떡하냐”하는 반대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어요.

✔️ 키워드: 비동의 강간죄, 성범죄 처벌법, 류호정, 위계적 성범죄, 성적 자기결정권

 

개정안, 핵심이 뭔데?

  • 형법 이름 바꾸기: 성범죄를 다루는 형법 32장의 이름은 ‘강간과 추행의 죄’인데요. ‘성적 침해의 죄’로 바꾸자는 겁니다. 죄로 인정되는 범위를 넓히는 거예요.
  • 강간죄 범위 넓히기: 현재는 ‘저항하기 어려운 폭행과 협박이 있었을 때’만 강간죄로 인정해왔는데요. 1) 폭행, 협박 또는 위계*∙위력에 의한 성교뿐만 아니라 2) 상대방 동의 없이 3) 정상적인 행동이나 생각을 할 수 없는 심신상실 상태일 때에도  강간죄로 처벌 할 수 있도록 요건을 늘립니다. 
  • 처벌 강화하기: 강간상해 등의 형량을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서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더욱더 엄하게 벌주자고 했고요. 동성 강간 처벌 수위도 높였습니다.
  • 성교’ 정의하기: 성기, 항문 등에 성기뿐만 아니라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도 성교로 정의했어요. 비교적 약하게 처벌하던 ‘유사 강간’을 ‘강간’과 동일하게 처벌하자는 거예요.

* 강간죄 상 ‘위계’: 현행법 일부 조문에도 ‘업무상 위계에 의한 강간’은 포함돼 있는데요.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니더라도 의사와 환자 등 다양한 관계에서의 ‘강간’도 처벌할 수 있어요.

 

“기본입니다” vs “기분일걸요”

  • 기본 중의 기본: 전국성폭력상담단체협의회는 “2019년 강간 피해 상담 중 폭행이나 협박 없이 이뤄진 경우가 70% 이상”이라며 기존 법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어요.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도 “강간죄의 판단 기준을 동의 여부로 바꾸는 것은 여성의 온전한 시민권을 보장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개정안을 찬성했습니다.
  • 각서 써야 하나: 반대하는 사람들도 국민의 정서를 고려해보면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나 법적으로 따질 때 “실제 상황에서 동의가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며 우려를 나타냈어요. 남성 이용자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성관계 전에 각서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불만도 나오고 있고요.

 

통과될까?

쉽지 않아요. ‘미투 운동’ 이후 지난 20대 국회에서만 ‘비동의 강간죄’ 법안이 10개가 올라왔는데요. 전부 흐지부지됐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 수도 있어요.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사회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고요. 정의당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등 다른 정당의 여성의원들도 적극 연대하고 있기 때문이죠. 전문가들은 관련된 형법 전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부분적으로는 개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어요.

 

다른 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뉴질랜드, 스웨덴 등은 이미 ‘동의 없는 성관계’를 처벌하고 있어요. 동의의 기준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요. 대부분 ‘피해자의 적극적 동의 또는 자유로운 동의’가 없을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했어요. 성행위 도중에 동의를 철회하는 것도 ‘비동의’로 간주해 처벌하는 곳도 있어요. 대한민국은 과연 대다수가 ‘동의’하는 성범죄 처벌법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