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큰 별이 지다

대한민국 여성운동의 큰 별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4일 9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이효재 교수는 남아선호 사상에 반기를 들었고요. 국내에서 처음으로 부모의 성을 같이 쓰겠다고 선언하며 이름을 ‘이효재’에서 ‘이이효재’로 바꿨습니다. 그는 호주제 폐지*를 이끌었고 국내에 여성학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이이효재 교수의 별세 소식에 정치권에서는 애도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추모했어요.

* 호주제는 가족 구성원을 호주에게 종속시키는 제도인데요. 개인의 자율성을 해치고 불평등한 가족관계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은 혼인 전에는 아버지가 호주인 호적에, 결혼하면 남편의 호적에,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의 호적에 올라야 했어요. 호주제는 2005년에 폐지됐어요.

✔️ 키워드: 인물, 페미니스트, 사회운동가

 

사회학과 여성학을 이끌던 교수

이이효재 교수는 1924년 경남 마산의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났고요.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왔습니다. 1947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귀국 후 그는 모교인 이화여대에 국내 최초로 사회학과를 만들고 교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한국이 진짜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여성학과의 설치도 주도했어요. 그는 광주민주항쟁 때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교수직을 박탈당했었는데요. 다시 복직해 1990년까지 교육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 당시 그는 이제 막 독립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을 발전시킬 수 있는 학문이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사회학 공부를 선택했대요.

 

페미니스트 그리고 사회운동가

그는 여성 지도자들을 더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국회의원 비례대표제*와 여성할당제를 도입하는 데에 앞장섰고요. 직장에서의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그는 한국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한국여성민우회를 조직했으며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회장 자리에도 올랐습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만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세계에 알린 인물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에는 북한을 방문해 남북한 여성들의 교류의 장을 열었으며,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에도 힘썼습니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비례해 당선자 수를 결정하는 제도인데요. 지지세력이 약해 선거로 뽑히기 힘든 후보에게 의회 진출의 기회를 주는 의의가 있어요.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이후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크게 늘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애도 물결

문재인 대통령도 자신의 SNS에 추모 글을 올렸어요. 그는 이이효재 교수가 국내 여성운동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 사회 운동에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며 “어두웠기에 더욱 별이 빛나던 시절, 큰 별 중 한 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선생님의 삶에 큰 존경”을 바친다고도 했어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가운데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라고 말했고요.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이이효재 교수를 국가의 약자를 위한 길을 내신 분이라며 치켜세웠고요. “대한민국 원조 페미니스트”라고도 했습니다.

 

장례는 여성장

교수의 빈소는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상희 국회부의장,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대표 등 80명의 여성들이 공동장례위원장으로 참여하는 ‘여성장’으로 장례가 치러집니다. ‘여성장’은 지난 2002년 군산 개복동 화재로 숨진 14명의 성매매 직업여성을 기리는 장례식이 열리면서 처음 쓰인 단어인데요. 여성운동가들이 여성 고인의 넋을 빌며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여성들 간의 정서적 연대를 다지는 의식을 두루 일컫습니다.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