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대생, 미국 디자이너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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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Mechanical process에도 적용된다

미국에서 어떻게 취직했는지 취업기를 써 달라는 제안을 받고 좀 망설였다. 회사에서 주니어를 갓 벗어난 위치에서 남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 길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나는 한국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군 생활을 비교적 일찍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015년도에 미국 버클리대학원 기계공학 과정으로 유학을 왔다.

Master of Engineering 프로그램에서 기계공학과는 선택할 수 있는 여러 트랙이 있었는데, 나는 Product Design을 선택했다. 원래 Product Design이라는 말은 UX를 이용한 앱/웹 인터페이스 디자인에서 통용되는데, 버클리 기계공학과에서는 Mechanical Design에도 동일한 프로세스가 적용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이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UX 연구가 앱/웹에서 잘 적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가장 빠르게 prototype(시안, 목업)을 만들 수 있고 그 lo-fi prototype으로 유저들에게 즉각 테스트해 반복적인 피드백을 빠른 호흡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계공학에서도 3D 프린팅 등 다양하게 lo-fi prototype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같은 UX 프로세스로 유저가 원하는 부분을 빠르게 캐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버클리 기계공학과는 rapid prototyping과 UX design을 동시에 가르쳤다.

이전의 기계공학이 [자동차를 만들자] – [멋있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하자] – [prototype을 만들었다] – [새로운 자동차가 만들어졌다!] 같은 프로세스였다면,

버클리에서는 [자동차를 만들자] – [유저는 X, Y를 원한다더라] – [X, Y를 줄 수 있는 가설을 세우고 그에 맞게 디자인하자] – [허접한 prototype을 만들었다] – [유저를 앉혀놓고 테스트해보니 X가 부족하다더라] – [X를 보강하는 가설을 세우고 그에 맞게 디자인하자] – [두 번째 허접한 prototype을 만들었다] … 반복 … [새로운 자동차가 만들어졌다!]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저의 감정 생각 오감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내가 이 프로세스에 매료된 점은, 유저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디자인으로 제공하기 위해 <예-아니오>를 통해 입증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유저의 감정, 생각, 오감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하나의 논리로 압축하는 과정이며, 유저와의 유대감과 공감대 형성 능력은 물론 기발한 방법 하나를 생각해 내기 위한 창의성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육점에서 고기의 질이 좋다는 걸 강조할 수 있는 디자인을 위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었다. 유저 관찰과 인터뷰 결과 놀랍게도, 가게에 진입할 때부터 유저는 고기를 보지 않았지만, 가게 자체의 인테리어를 보고 고기의 질에 대한 생각을 상당 부분 결정해버린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경우에 가장 효과적인 디자인은 고기를 디스플레이하는 것보다 가게를 최대한 고급스럽게 꾸미는 것이었으며, 특히 바닥을 항상 깨끗이 하고 이를 강조할 수 있는 깔끔한 타일로 교체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런 강의와 조별 프로젝트가 계속될수록 나는 전통적인 기계공학에서 찾을 수 없었던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내가 느끼는 기계 공학도로서의 한계를 어쩌면 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실제 디자인 경험은 전무한 수준, 그나마 어도비 소프트웨어도 조금씩 깔짝대 본 것이 전부였지만 “이게 내 길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레쥬메, 포트폴리오 그리고 Linkedin

버클리 석사 과정이 끝나 가면서 한국에서부터 꿈꿔 왔던 실리콘밸리에서 취업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살면서 처음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고 게다가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없는 낯선 곳에서의 직업을 구하기는 막막했다.

다행히 버클리에 취업 준비생을 위해 컨설팅을 해주는 곳이 있어서 여기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당시 내가 들었던 황금 같은 Tip은 아래 3가지부터 확실하게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 레주메 : 1페이지 분량에 본인 경험과 경력을 최대한 압축해서 작성할 것. 여기서 미세먼지 팁은 미국에 유학 중이거나 거주 중인 사람들은 현재 미국 주소를 적어놓을 것. 그렇게 하면 현지에 있는 회사 입장에서 온 사이트 면접을 요청하기 편하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학생이 학점 평점을 적는데 회사들은 아주 조금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공간을 아끼는 것을 추천한다.
  • 포트폴리오 : 그동안의 디자인 결과물 중 최고인 것만 골라 담은 “이게 바로 나요”를 보여주는 작품 묶음. 회사 경험이 없다면 최소한 개인 프로젝트라도 해서 나의 디자인 철학을 보여줘야 한다. 애플, 우버, 인스타그램 같은 회사들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같은 회사들은 리서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스타트업들은 그래픽, 와이어 프레임, 유저리서치, 심지어 로고와 애니메이션 디자인까지 다재다능함을 중점으로 보기 때문에 지원하는 회사의 입맛에 맞게 바꿔야 한다. 온라인 포트폴리오 웹사이트를 제작해서 링크를 제공하는 것은 불문율.
  • LinkedIn : 링크드인은 회사 버전의 페이스북으로서 미국 취업에서 없으면 안 될 계정이다. 여기에 기존 이력뿐 아니라 레주메에 공간이 좁아 담지 못했던 프로젝트, 어워드, 장학금, 학생활동, 포트폴리오 등 모든 걸 때려 담아야 한다. 리쿠르터의 종류와 종류별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적도록 하겠다.

경력 없지만 엄청 잘함을 뽐내라

미국에서는 경력직이 아니더라도 당장 요구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문화이기에, 수습 혹은 트레이닝 기간이 있는 회사는 드문 편이다.

경력이 없는 junior들을 뽑는 이유는, 단지 그 사람들은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적은 연봉으로 높은 능률을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junior라도 경력이 없다면 개인 프로젝트에서 어떤 기술을 잘 사용하며 “단지 내가 경력만 없지 엄청 잘함”을 뽐내서 입증해야 한다.

나  또한 디자인 경험이 거의 없는 junior 지원자였기 때문에 석사과정 중에 했던 앱 디자인, UX 디자인 경험 등을 최대한 살렸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부족한 것 같아 개인 프로젝트로 포트폴리오 자리를 메웠다.

이 과정이 가장 괴롭고 힘든데, 사실 할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진짜 힘든 건 롤모델이 되는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참고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다 보면 상대적으로 내가 초라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내가 학·석사 도합 6년의 공학도 생활을 뒤로하면서까지 디자이너 포지션에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원하는 그 과정을 억지로라도 즐겼기 때문이다.

타인의 멋진 포트폴리오를 보면 좌절감이 왔지만 동시에 “나도 언젠가는 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졌다. 그렇게 나는 이후 장장 8달에 걸쳐 총 200곳 넘게 취업 지원을 하는 고생문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