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잘한다니 불합격입니다

‘맨땅에 헤딩’도 때론 효과가 있다

나는 회사 크기에 관계없이 지원했다. 미국에서는 대기업을 제외하곤 취업비자 H1-B를 지원해주는 곳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스타트업에도  평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잃을 게 없으면 하자’는 생각으로 조그만 스타트업까지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공채라는 개념이 없어서 포지션이 열려있는지 웹사이트에 일일이 들어가 확인해야 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회사들의 사이트에 수시로 들어가 확인했는데, 역시나 포지션은 쉽게 나지 않았다.

좌절감을 수없이 겪으며 포기해야 하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레알마드리드의 호날두가 수많은 (가끔은 어처구니없는) 슈팅 시도 끝에 결국 골을 넣는 것을 보고, 나도 저래 보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뽑고 있다”라는 공지가 있으면 공식적인 루트로 지원했고, 없으면 해당 팀장, 엔지니어, 디자이너, 심지어 CEO까지 링크드인이나 이메일을 어떻게든 알아낸 다음에 메시지를 보냈다.

이메일만 알아내면 대뜸  “나는 누구고 무슨 전공을 했으며 무슨 일에 관심이 많다”며 레주메와 포트폴리오를 들이밀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오기도 났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더니 스타트업 CEO 세 명에게서 답신을 받았고 모두 “너의 진취적인 접근에 감명받았다. 한번 직접 만나서 이야기나 해보자”라는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한 명은 심지어 “현재 사업은 조금씩 지분을 넘겨주려 하고 있다.

대신 가상현실 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니 거기에 사업 초기부터 참여해보는 건 어떠냐”며 비공식 오퍼를 주기도 했다. 비록 비자 문제 때문에 함께 할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이 ‘맨땅에 헤딩’ 접근이 아주 적은 확률이나마 통할 때가 있고, 연결만 된다면 골인될 확률이 높다는 걸 알았다.

 

“Being open to do any work reflects poorly on your confidence.”

 

하지만 항상 긍정적인 피드백만 온 것은 아니었다. 2015년 1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대략 6개월간 석사 졸업을 앞두고 200곳 정도에 이력서를 뿌려대며 정신없이 이메일을 주고받는 중에 날아온 한마디가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Being open to do any work reflects poorly on your confidence.”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감의 부족을 뜻합니다.”

나는 깜짝 놀라 내가 지원하며 보냈던 이메일을 다시 읽어보았다.

 

Hello, I am Hyunil Cho, Master of Engineering student in Mechanical Engineering, Product Design concentration … [중략] … I have experienced skills to contribute to different types of project. I am eager to design human-centered device, especially through a deep understanding of users with context interpretations. The following are highlights of my qualifications and accomplishments. In-depth knowledge of product design … [중략] … My strong leadership in projects, combined with technical skills and creativity allows me to play a crucial role in innovative environments. Furthermore, I am an expert presenter so that I can convey ideas logically … [중략] … that allows me to be open to any type of work regardless of the project kind.

 

나는 아차 싶었다. 이메일의 마지막 문장 ‘이것이 나로 하여금 프로젝트 종류에 관계없이 뭐든지 할 수 있게 합니다’ 에서 날카로운 피드백을 받은 것인데, 여러 회사에 지원하며 복사-붙여넣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 무심코 좋은 말들만 골라서 서술한 것이 딱 걸려버린 것이다.

나는 석사 졸업 후에 디자인 관련 일을 하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아무런 경력이 없어 산업과 관계없이 되는 대로 지원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나의 태도는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였던 셈인데 그것이 오히려 전문성 부족을 그대로 나타내는 자세였다.

 

다양한 스펙이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나는 다시 그곳에 이메일을 보내 구체적으로 내 지원서에 어떤 부분이 부정적이었는지를 물어보았고, 새 답신을 받았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우리 회사의 프로젝트 중 어떤 프로젝트가 너의 경험과 resonate 하는지 서술이 부족하다.

Leadership이란 단어는 보통 management 포지션에 연관이 된다. 되고 싶은 것이 IC (individual contributor)인지, 매니저인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3D 모델링, 프로토타이핑, 산업디자인, UX 디자인, 증강현실 인터페이스 디자인, 드론 제품관리 인턴십 등 다양한 경력을 서술했기에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위의 천금 같은 피드백으로 얻은 교훈은 ‘뭐든지 설명은 간결하고 분명해야 하며 해당 팀의 프로젝트를 콕 집어 이것을 하고 싶다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놀랐던 점은 다양한 스펙을 갖고 있음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것인데, 어떤 회사들은 훨씬 간결하고 필요한 경험만 이야기하길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연히 이는 회사마다 성향이 다르다. 경험상 보통 대기업일수록 필요한 스펙만 적는 것을 선호하는  편)

무작정 슛을 세게, 많이 갈길 것이 아니라 ‘슈팅은 마지막 패스’라는 말처럼 골대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방향으로 적절한 힘을 줘 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나는 지원서들을 수정하며, 앞으로 두 가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 내가 왜 이 회사/팀에 들어가려 하는가? (동기)
  • 이 회사/팀은 왜 나를 뽑아야만 하는가? (능력)

전화 인터뷰는 티키타카(짧은 패스)가 효과적

열심히 지원서를 봄날의 꽃가루처럼 흩날리다 보면 대략 20곳 중 한 곳 정도 이메일이 온다. 이메일로 전화 요청을 받게 되는데, 사실 인터뷰라기보다는 pitch call이라 해서 회사가 ‘우리는 뭘 하는 팀이다’라는 피치를 하는 시간이다. 30분~1시간 정도 팀 매니저와 대화를 하는 셈이지만 그렇게 큰 부담은 없다.

내 실력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각자의 비전이 일치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에 (‘오늘 날씨 왜 이러죠’ 같은 시시콜콜한 말로 보통 시작한다) 회사와 팀의 소개, 가치, 프로젝트 등을 20분가량 듣는다. 수많은 pitch call을 통해 깨달은 점은 듣기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팀 매니저가 이야기를 끝내면 “Okay, now let’s talk about yourself” 하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턴이 돌아오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내 경험상 그렇게 좋은 흐름이 아니다.

서로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대신, 팀의 프로젝트를 듣다가도 “그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또한 쉽지 않아 보이긴 하네요. 제 프로젝트 중에 배송 업체와 함께 개발하는 게 있었는데, 배달원과 물류 매니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거든요. 둘 이상의 stakeholders가 존재할 때…“와 같이 질문하는 식으로 자연스레 내 프로젝트 소개를 이끌어 나가면 이 팀과 내 경험의 접점이 있다는 것을 잘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접점을 찾기 힘들다면 어떻게든 질문이나 태클을 한 번쯤 걸어봐야 한다. 너무 주제넘은 질문은 하지 말아야겠지만, 대체로 미국 회사들은 비판적 사고에 굉장히 열린 마인드를 갖고 있기에 지원자가 약간의 태클을 한다 해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지원자가 깊게 생각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거기에 내 경험이 어우러진 질문이라면 금상첨화이다. 그렇게 4-5곳에서 onsite 면접 요청이 왔고, 그중에 하나가 내 첫 직장이었던 메르세데스 벤츠의 Future Transportation 팀이었다.

 

비자 문제와 생활 안정이 가장 큰 고려사항이었다.

나는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위치한 메르세데스 벤츠 Future Transportation 팀과 통화를 하면서 그 팀의 철학과 방향성이 대체로 내가 추구하는 바와 잘 맞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0명 남짓의 작은 팀으로, 밴과 트럭을 이용한 미국에서의 물류 배달을 최적화하고 새로운 기술(인공지능, 머신러닝, 이미지 프로세싱)을 접목해 밴 시장에서 이전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다.

새로운 자동차를 디자인한다기보다 자동차를 이용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주된 임무였으며, 벤츠의 전통적인 디자인 방향과 브랜드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이 팀은 대기업의 안정적인 지원과 스타트업 같은 수평적인 업무환경이 어우러져 실패에 대한 큰 스트레스 없이 과감한 디자인을 할 수 있었고 이에 걸맞은 성향의 디자이너를 찾고 있었다.

평소 큰 기업의 위계적인 문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비자 문제와 생활(이라 쓰고 생존이라 읽는다)의 안정도 고려해야 했던 나로서는 첫 직장으로서 더할 나위가 없는 부분이었다. 또한 이 팀에서도 나를 마음에 들어 했는데,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디자인 위주로 짠 포트폴리오의 비전통적이면서 실험적인 느낌이 이 팀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팀 매니저와 짧은 패스를 주고받을수록 점점 더 통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예상대로 다음 날 나는 onsite(사내 면접) 요청을 받을 수 있었다.

 

 

체스터 조
Triplebyte 디자이너 | 실리콘밸리 인재채용 플랫폼 Triplebyte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미국유학부터 취업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려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