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전 세계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녔다

어떤 이들은 한반도를 보고 토끼를 닮았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같은 모양을 보고도 호랑이를 닮았다고 말한다. 이탈리아가 장화처럼 생겼다는 데에 별 이견이 없어 보이고, 프랑스는 육각형 비스름하게 생겼다고 해서 ­불어로 육각형을 뜻하는 ‘렉사곤(L’Hexagone)’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 내가 사는 뉴욕州를 지도상에서 가만히 보고 있자면 어떤 모양이 형성되는 것 같기도 한데 뭐라 딱 잘라 말하기 힘든 형태이다. 장화가 될 뻔한 못생긴 하이힐 같기도, 그냥 빚다 만 삼각형 같기도 하다.

나는 지도를 자주 들여다보는 편이다. 워낙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아서 세계 지도상에 어느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는 빠삭한 편이지만, 내가 사는 도시 속 특정 랜드마크나 동네 위치를 설명할 때는 다소 애를 먹는다.

누가 길을 설명해 줄 때도 지도를 보지 않으면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을 때가 많다. 평소에는 하도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며 살아서 장거리 항법에는 강하지만 단거리 항법에는 약하다고 둘러댄다.

다국적기업에서 근무하신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전 세계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녔다. 그 때문에 유치원은 중국과 미국에서, 초등학교는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는 일본에서 국제 학교를 나왔다. 다년간 영미권 교육을 받은 나에게 미국 대학 진학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인지 잘 다니던 미국의 UC 버클리를 그만두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만류했다. 젊음의 패기 덕분이었을까. 나는 그 무렵 유학생들 사이에서 새 풍속도로 자리 잡고 있던 소위 ‘역유학’을 단행했다.

한국에 돌아와 연세대학교 국제학부에서 정치 외교와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비록 학생 신분이었지만 현장에서의 체험과 치열한 사유를 결합한 살아있는 정책 입안만이 정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믿는 순진한 신념마저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를 다녀왔다. 통역병이 되면 상급 부대에서 높으신 분들을 모시고 편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다는 지인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 이틀을 벼락치기로 준비하고 시험에 응시한 끝에 육군 어학병이 되었다. 영어 실력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나는 논산에서의 끔찍한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결국 2작전 사령부 사령관실에서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꿀 빠는’ 군 생활을 상상하며 입대한 내가 말로만 듣던 ‘포스타(four star)’ 영감님을 셋이나 모시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이등병으로 시작해 병장을 달기까지 내가 모신 사령관 한 분은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했고, 또 한 분은 3사 출신 합참의장 1호에 등극했다. 정말 버라이어티 한 군 생활이었다.

전반적인 정치와 외교를 넘어 안보와 국방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과 분쟁 해결을 현실 정치의 본무대로 생각하는 지금의 가치관 역시, 군사 외교에 해당하는 의전 통역과 각종 훈련 및 행정업무가 밑바탕이 된 촘촘한 군 생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문과는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다”

전역한 뒤 곧바로 홍콩 중문대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했고, 이때 홍콩의 가장 유망한 젊은 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사이먼 셴(Simon Shen) 교수를 만나 빠른 속도로 친분을 쌓았다.

어느 날 단둘이 점심을 먹으며 한국에서는 나 같은 문과 출신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이 어려워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얘기를 해주었는데, 사이먼이 내게 해준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문과가 왜 그런 취급을 받을까. 원래 이과가 사물을 다스리는 학문이라면, 문과는 사람을 다스리는 학문이거든.”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배운 것들을 써먹을 수 있는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외국계 연구기관이 좋겠다 싶어서 유럽에서 정당 정책 연구소로 둘째라면 서러운 독일 기독교 민주연합(CDU)의 아데나워 재단(Konrad-Adenauer-Stiftung)에서 연구 인턴십을 수료했다.

그곳에서 독일 집권 여당의 막대한 공적자금을 바탕으로 남북 관계, 남중국해 분쟁, 사이버 안보, 유럽 난민 사태 등에 특화된 각종 연구를 수행하고 관련 간담회와 심포지엄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아데나워 재단은 내게 제대로 운영되는 싱크탱크가 얼마나 강력한 소프트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들은 전 세계 120여 개 국가에서 600명에 달하는 직원과 200개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다.

특정 정당의 정치적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한편 독립된 재정으로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국고보조금만으로 운영되는 한국 정당 싱크탱크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선거전략을 마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이라는 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초당적인 국가 정책을 개발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죽은 지식이 현실을 변화시키기엔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싱크탱크 업무를 경험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세상을 넓게 보면 그저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며 좋은 학술 이론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순진한 신념으로 무장한 채 책상 앞에 앉아 머리와 펜대만 굴리는 지식인은 생각보다 흔하며, 그런 ‘죽은’ 지식인이 현실을 변화시킬 정도로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오늘날 학계가 지나치게 추상적인 이론에 치중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연구에 매몰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많은 학생이 학위를 취득하고 싱크탱크에 청춘을 던지고 있다.

현재 내가 몸담은 뉴욕 소재의 한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도 우리 스태프와 펠로우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발굴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이 ‘좋은 생각’을 제공할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싱크탱크는 업무의 특성상 전통적인 학계나 정부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순발력과 사회성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칼럼에서는 필자가 컬럼비아대학교 정책대학원 과정을 거치며 유수의 싱크탱크에 지원해 합격하기까지의 과정과 본인이 경험한 싱크탱크의 생태계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싱크탱크란?

쉽게 말해 두뇌집단, 지식집단을 지칭합니다. 모든 학문분야 전문가의 두뇌를 조직적으로 결집하고 조사·분석 및 연구 개발을 행하고 그 성과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입니다. 주로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경영전략을 연구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 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이 있습니다.

 

 

 

쇼니 송
칼럼니스트 | 미국, 동북아 정세에 관심이 많으며 미국의 싱크탱크 EastWest Institute에서 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