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때론 더 유리하다

강한 적응력과 언어능력으로 도전하다

조국을 떠나 타지에서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엑스팻(Expat)’이라고 부른다. 밖을 뜻하는 Ex와 조국을 뜻하는 Patria가 합쳐져 생긴 영어 단어로 ’Expatriate(재외국민)’의 줄임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반 이상을 이렇게 해외에서 엑스팻으로 살아왔다.

유치원 때 부모님을 따라 처음 비자를 받고 중국 톈진시로  건너간 뒤, 어느덧 한국,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오가며 생활한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아주 어린 나이에 처음 외국을 경험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을 나오고, 병역을 필하고, 또 다양한 인턴십을 두루 거쳤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 살면서도 스스로가 엑스팻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재외국민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어디를 가도 내가 ‘이방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곳 맨하튼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묘한 끌림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온갖 낯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뉴욕에 나 같은 엑스팻은 바다에 떨어진 물방울이나 다름없기 때문 아니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오랜 떠돌이 생활이 내가 강한 적응력과 언어능력을 심어줬다는 점이다. 나는 그 두 가지를 내 관심 분야에 접목해 보기로 했다.

 

Staff 면접과 Fellow 면접

지난해부터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에 입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상위에 랭킹한 기관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는 물론이고, 자기소개서 작성 등 필요한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대학원 채용사이트를 통해 지원한 곳은 입사 지원 시 요구되는 서류전형을 무난히 통과시켜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 이력과 자소서의 스토리가 맞아떨어지고 무엇보다 컬럼비아의 지명도를 등에 업고 지원해서 큰 부담을 갖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터넷에서 해당 기관과 관련된 자료들을 공부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싱크탱크가 그렇듯 입사시험 유형이 따로 없기 때문에 암기식 문제 풀이로 준비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말해서 관건은 인터뷰, 즉 마지막 관문인 면접만 통과하면 된다. 대체로 면접은 Program Coordinator 혹은 Program Associate이 진행하는 1차 실무진(Staff) 면접, 그리고 임원·연구원(Fellow) 등이 진행하는 2차 면접으로 나뉜다.

순서가 바뀌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2차 임원·연구원 면접은 인사부서(HR)에서 자소서를 토대로 하는 평가가 있으며, 해당 싱크탱크의 연구원과 지원 분야에 대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2개 단계로 나뉘는 것이 보통이다. 본인이 지원한 프로그램의 연구과제 및 이념적 정향과 기관의 성격에 따라서 맞춤형 예상 문제들을 만들어놓고 예행연습을 해보는 것이 유리하다.

싱크탱크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사람이 시사 이슈에 무관심한 것 만큼 모순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평소 뉴스를 즐겨보지 않더라도 면접을 앞둔 시점으로부터 최근 2-3개월간 있었던 주요 뉴스, 특히 본인의 지원 분야에 관한 소식은 훑어보고 들어가는 것이 현명하다.

조별 면접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면접은 싱크탱크 오피스에 직접 방문하여 현장 면접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여건상 참석이 어려운 경우, Skype 화상통화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본인의 상황과 니즈를 적극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

 

“How do you assess Moon’s policy on inter-Korean relations?”

연구원 면접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 중 하나는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리사 콜린스 연구원이 던진 질문이었다.

The Trump-Kim summit in Hanoi ended last month without an agreement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on denuclearization. But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still seems to push ahead with the development of inter-Korean relations.

How do you assess Moon’s policy on inter-Korean relations? What impact do you think this will have on the U.S.-ROK alliance? And feel free to provide us with as many verified facts as you want to corroborate your answer.

우선 인터뷰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는 나였지만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이런 경우 크게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첫째, 이렇게 구체적인 질문에 즉흥적으로 답변할 만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다. 안타깝지만 이런 경우에는 인터뷰에서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본인이 정말 해당 이슈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 솔직하게 털어놓도록 하자.

다만 “제가 아는 바가 없어서…”라고 말끝을 흐리며 인터뷰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실례지만 연구원님이 조금 더 상세한 배경설명을 해주시면 그에 대한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라는 식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허나 면접에 나오는 질문들은 대체로 해당 분야 종사자 모두의 귀추가 주목되는 큰 이슈나 사건을 토대로 나오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둘째, 사실관계는 공부하여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지만 이에 대한 본인의 의견이 불명확하다. 이런 경우 크게 두 가지 접근방식이 가능한데, 하나는 본인이 아직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찬반 의견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설명하고, 각각에 대한 본인의 비평을 덧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싱크탱크의 이념과 성격을 미리 파악하나 뒤, 그들의 ‘입맛에 맞는’ 답변을 제공하는 것이다. 내 경우, 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 그리고 스콧 케네디 선임고문 등이 평소 써왔던 글과 입장을 대거 인용하며 답변의 공신력을 높일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싱크탱크에서의 인사 검증은 결코 ‘실력’ 하나만으로 승부를 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정책연구를 꿈꾸는 청년이라면 관심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열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기본기를 바탕으로 순발력과 위트, 신속·정확한 의사 표현을 가능케 하는 언어능력, 그리고 뛰어난 사회성과 프로페셔널한 매너는 채용담당자를 파고드는 요소가 된다.

 

거절도 신속 공손하게 하라

특히 사회성과 프로페셔셜리즘이 그렇다. 이 두 가지가 왜 특히나 중요한 자질인지는 싱크탱크의 업무를 보다 상세하게 다루는 다음 칼럼에서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만일 이 모든 과정을 거쳐서 복수의 합격 발표와 오퍼를 받았다면 축하드린다. 하지만 합격·불합격이 결정된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순간일 수 있다.

싱크탱크 업계는 언뜻 운신의 폭이 넓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은 매우 촘촘하고 보수적인 생태계다. 따라서 한 번 망가진 평판은 다시 복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차후 다른 싱크탱크에 지원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본인도 운 좋게 복수의 오퍼를 받았고, 몇몇 제안을 거절하는 이메일을 최대한 신속하고 공손하게 다음과 같이 보냈다.

Dear Ms. Applebaum,
Thank you very much for considering my application. While I am deeply inspired by the work that you do, I recently received and have accepted an offer from another organization. I remain very interested in your most recent project on [구체적인 예시] and hope that you will consider an application from me in the future.

 

단순 지식으로 압도하려 하지 마라 

끝으로 서류나 면접에서 단순 지식의 양(量)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는 최소 해당 분야 석박사를 따고 십 수년간 해당 분야를 연구해온 베테랑들이다. 핵심은 오직 나만이 이곳에 기여할 수 있는 독창적인 경험이나 자질이 무엇이 있느냐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유학생들은 이런 면에서 유리한 측면이 없지 않다. 내가 앞서 말한 ‘이방인’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은 대외정책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와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스토리텔링에 해당한다.

프랑스인이 만든 스시를 보면, ‘샤리(밥)’를 덮은 ‘네타(생선)’의 두께가 보통 일본 초밥의 두 배나 될 정도로 엄청나다. 여기에 매료된 프랑스 미식가들을 보고 오직 양에 압도되었다고 매도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비주얼만 보면 확실히 일본 스시의 담백한 맛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상관없다.

결국 핵심은 전통적인 양식의 준수도 아니고 단순한 음식의 양도 아니다. 얼마나 다채롭고 흥미로운 스토리가 음식 안에 녹아 들어있는지가 경쟁력이다. 자신만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스토리텔링은 무작정 암기해서 내뱉는 팩트의 향연보다 매력적이다.

모방과 가식으로 포장된 패스트푸드로 지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나폴리 피자를 먹으며 나폴리의 역사를 구구절절 외우는 사람은 없다.

 

 

쇼니 송
칼럼니스트 | 미국, 동북아 정세에 관심이 많으며 미국의 싱크탱크 EastWest Institute에서 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