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보좌관으로 자리 옮겼대요

싱크탱크에서 정부 요직으로…

“쇼니(schoni)씨, 그 얘기 들었어요?”
“캐머런 말이죠? 그러게요. 어디로 옮긴다고 하던가요?”
“컨설팅이요. 워싱턴에서도 제의가 들어왔다는데. 알잖아요, 트럼프랑 안 맞는 거.”

“그건 그렇죠. 노엘 씨도 곧 자리 옮기시겠네요?”
“네, 신임 대표가 사람을 데려온다고 하니까 전 아마 AP(아태지역)팀으로 가겠죠.”
“그럼 옆자리로 오시겠군요. AP 주간브리핑에서 뵈어요.”

몇 주 전부터 사무실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필자가 몸담은 싱크탱크 대표인 캐머런 먼터(Cameron Munter) 전 대사가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먼터 전 대사는 파키스탄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하고,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을 군 당국과 함께 지휘했으며, 파키스탄 정보요원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구금된 CIA 비밀 요원을 무사히 구출해 귀국시킨 바 있는 입지전적인 외교관 출신이다.

그런 그가 유력 외교·안보 싱크탱크 대표직을 사임한다는 소식이 돌자 워싱턴에서도 군침을 흘리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정치나 외교 관련 분야에 종사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이런 인사이동에 관한 소식을 뉴스 속보보다 먼저 전해 듣는 경우가 있다. ‘헤리티지재단에서 근무하던 아무개가 미국 대통령실의 안보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아무개가 국방부의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로 가게 되었다.’ 등의 소식을 말이다.

모두 이쪽 싱크탱크 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거물급 인사들이다. 민간 싱크탱크에서 근무하다 말고 정부 요직으로 이직한다는 이런 호재, 한국에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싱크탱크 500개가 밀집한 곳이 워싱턴DC

펜실베이니아대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TTCSP)’은 매년 전 세계 6,000개가 넘는 싱크탱크를 평가하고 그 순위를 보고서로 발표한다. 이 많은 기관 중 1/3에 달하는 연구소가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다시 이 중 500여 개가 밀집한 곳이 바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다.

세계 탑3 싱크탱크의 고향인 이곳 워싱턴에는 독립 싱크탱크만 400개 이상이 있으며, 미국 정부 부처나 입법부와 연계된 기관만 수십 개가 넘는다.

미국에서 ‘싱크탱크’로 불리는 기관은 일반적으로 공공정책 연구를 시행한다. 쉽게 말해 연구용역을 뛰는 것인데, 이는 기업이나 조직, 더 나아가 국정운영 전반의 전략을 세우거나 정책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설치된 ‘두뇌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싱크탱크는 정기적으로 단행본, 보고서, 브리핑이나 학술회의 등을 통해 각 기관만의 특색 있는 정책을 제언한다. 각국의 대통령이나 장·차관들도 이곳을 방문해 여러 연구원 및 스태프와의 회의를 거쳐, 보다 효율적인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얻어가곤 한다.

이런 활발한 민간 싱크탱크 문화는 한국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부러워하는 미국의 강점 가운데 하나다. 각종 학술행사와 사교모임을 통해 각계각층 인사들의 원활한 교류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싱크탱크의 성격은 어쩌면 로비스트와 연구기관의 중간쯤 된다고 볼 수 있다.

싱크탱크의 관심 분야는 크게 여섯 가지로 나뉜다. 경제·산업·기술, 보건·복지·개발, 외교·안보·국방, 거버넌스, 도시·인프라, 그리고 문화·교육이다. 물론 필자가 근무 중인 곳처럼 외교·안보·국방 등의 특정 분야에 집중하거나 틈새시장 공략하는 기관도 있지만 흔치 않은 케이스다.

전형적인 싱크탱크 소장은 국무부나 국방부의 고위 관료 출신이 맡는다. 소속기관의 최고위급 전문가는 보통 두 가지 경험치 중 하나를 끼고 들어오는데, 정책 결정 경험이 풍부한 전직 관료나 탄탄한 학술적 배경의 연구원이 조직의 중추신경을 담당한다. 따라서 정권교체 때마다 비슷한 인재가 쏟아져 나와 싱크탱크 고위직이 대거 교체되는 흥미로운 현상도 목격할 수 있다.

 

한국은 싱크탱크의 개념을 무색하게 한다

미국의 싱크탱크는 그 활동 폭이나 기관 성격에 비추어 볼 때 한국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싱크탱크라는 개념 자체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게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용어도 기관의 특성과 무관하게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의 싱크탱크는 대체로 정치적 공공성과 재정적 독립성이 선결되어야 바로 설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특정 고객이나 정파만을 위한 연구는 금기시되는 것이 업계의 암묵적 룰이며, 민간 싱크탱크 재정의 큰 축을 차지하는 소위 ‘슈퍼리치’와 후원 기업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게 일종의 교리처럼 자리 잡고 있다.

공공성 및 독립성을 추구하는 싱크탱크의 가치관은 우리에게 ‘필요조건’과도 같다. 그 외에 이 생태계를 가장 활성화하는 ‘충분조건’으로 미국 특유의 개방적인 공직 채용 문화와 시장 논리를 통한 자유로운 아이디어 경쟁을 예로 들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은 ‘싱크탱크’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남용하면서도 그 개념을 가장 무의미하게 퇴색시키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특히 정치권에서 대선 출마를 목표로 하는 내로라하는 정치인은 모두 저마다의 ‘싱크탱크’를 출범시킨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비공식 선거캠프의 정책 자문을 위한 폴리페서와 전문가 집단의 유착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렇게 형성된 자칭 ‘싱크탱크’는 오로지 특정 정치인의 선거 승리만을 목표로 연구를 이어간다. 대부분은 설립자가 선거에 승리하면 당선을 이유로, 패배하면 낙선을 이유로 존립 여부가 위협받는다.

간판은 남아있더라도 더 이상의 유의미한 기능은 없다. 애초에 공공성을 내포한 비전이 있던 것도 아니고, 재정 독립성이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출범시킨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와해되더라도 누구 하나 괘념치 않는다.

물론 여의도연구원이나 민주정책연구원처럼 주요 정당들이 운영하는 소위 ‘싱크탱크’도 있다. 이런 정당 산하 연구원은 이전 칼럼에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특정 정치인이나 선거 이벤트를 중심으로 설립된 기관에 비해 지속성은 더 담보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정 정당을 고객으로 삼고 있기에 공공성이 부족하고, 실제 운영도 정당의 공천에 필요한 자료를 공급하는 데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싱크탱크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수많은 기관이 정부가 관계부처의 일을 맡기기 위해 부속품처럼 운영된다. 이런 국내 ‘정부 싱크탱크’ 가운데 세계 랭킹이 가장 높은 KDI(한국개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원, KIDA(한국국방연구원) 등이 정확히 그런 경우다.

초고속 성장과 개발 시대에 그들 연구기관에서 이룬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정부 산하기관이라는 태생적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는 당리당략만을 연구하지 않는다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도 마찬가지로 이념적 정향을 이유로 그 객관성을 의심받는 경우가 있다. 특히 기술적 분석이 아닌 사상과 가치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연구영역에서 비판이 거세다. 이를테면 AEI나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 같은 곳에는 공화당 계열이라는 딱지가 붙고,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에는 민주당 계열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한국과의 차이점이라면, 이들에게는 특정 정파와 결을 함께하는 이념적 지향점이 공통분모로 있지만 선거 승리나 당리당략만을 위해 연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우선한다.

그렇다면 미국 싱크탱크의 독립성은 어떻게 담보되는 걸까? 재원 확보를 위한 무한경쟁은 미국도 치열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어렵게 축적된 재원이 설립 취지인 공공의 이익과 독립적인 활동의 밑거름이 되느냐는 문화의 철학의 문제에 더 가깝다.

필자가 몸담은 싱크탱크도 각종 재단과 기업, 그리고 ‘high-net-worth individuals’라고 분류되는 ‘슈퍼리치’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우리 조직의 경우, 트랙 1.5/2 전략에 방점을 두고 있어 군사·외교 대화를 직접 다루기 때문에 정부 재원은 일절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트랙 2란 미국과 북한과의 사례처럼 소통이 전무하거나 부진한 국가와 최소한의 협상 채널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하는 민간외교 전략을 일컫는다. 트랙1.5는 이런 외교채널에 학자들뿐 아니라 군인이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현직 관료들을 참석시킨다.

필자가 맡은 업무도 이런 트랙 1.5/2 업무에 특화되어 있는데, 우리가 주최하고 중재하는 군사·외교 대화에는 통상적으로 민간 학자보다 고위 관료가 더 많이 배석한다.

여기서 균형감각이 매우 중요한데, 참석시키는 관료는 모두 정부 대표가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참석해 각자 능력 범위 내에서 자국의 이익을 대변한다. 이는 정부 차원의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무화과 나뭇잎’ 설정으로, 보다 진솔하고 매끄러운 물밑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쇼니 송
칼럼니스트 | 미국, 동북아 정세에 관심이 많으며 미국의 싱크탱크 EastWest Institute에서 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