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 행사는 ‘인싸’와 ‘아싸’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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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필요”

미국 싱크탱크 생태계의 심장부는 워싱턴이다. 이런 워싱턴의 힘은 크게 주먹을 쥔 왼손과 악수를 하려는 오른손이 합쳐진 양손을 통해 구현된다. 그렇다, 왼손이 바로 총칼을 잡은 국방성, 오른손이 펜대를 손에 쥔 국무성이다. 이 두 조직은 미국 대외정책을 다루는 데 있어서 상극관계라고 보면 된다.

국방성은 일방적 원칙과 군사력의 행사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고, 국무성은 트랙1이라는 외교적 대화를 통한 해결에 주력한다.

90년대 초반에 냉전에 끝나면서 두 부처의 신경전은 한층 심화된다. 흔히 전문가들은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을 국방성의 전면적인 승리로 보고, 북한과 이란에 대해서는 국무성이 아직까지 승기를 잡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싱크탱크의 흥행스코어는 이 두 거대 조직 사이에서 얼마나 치밀하게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양손이 손뼉을 치며 이견이 없는 경우에는 문제 될 것이 별로 없다.

일본의 우향우를 대하는 두 조직의 입장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무역전쟁이 한창 달아오른 요즘, 중국몽(中国梦)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정상 국가화와 재무장이 필요하다는 데 두 조직 모두 동의하는 듯하다.

부분적으로 볼 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이 필요하다는 것이 워싱턴의 상식으로 정착되고 있다. 아시아에서 우리가 느끼는 중국과 일본의 모습은 미국 현지 정책전문가들의 인식과 크게 다르다.

펜과 총칼, 한마디로 국무성과 국방성 모두가 응원하고 지지를 보내는 건 어떤 경우일까? 그들이 신뢰할 만하다고 느끼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이유일 것이다. 단순히 동맹국 차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군사·외교적 자원뿐만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 그 자체에 대한 신뢰감이 워싱턴에 만연해 있기 때문에 훨씬 원활한 교류가 가능하다는 느낌을 매번 받는다.

 

4월 초엔 성대한 벚꽃 축제가 열린다

친절하고 예의 바른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도 물론 한몫하겠지만, 일본에서 그동안 공들여 축적해온 친일(親日) 네트워크를 위한 투자가 그들에게 우호적인 이곳 분위기의 가장 큰 배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로 매년 4월 초면 워싱턴 포토맥 강변을 따라서 성대한 벚꽃축제가 열린다. 이때만 되면 일본대사관과 문화원, 그리고 온갖 일본 관련 단체가 고위 관료 및 정∙재계 인사들로 북적거린다.

좀 과장하자면 좁은 워싱턴 전체가 일본의, 일본을 위한, 일본에 의한 연회장이 된다.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K스트리트 주변의 정책연구소와 국제기구가 이때만큼은 모두 일본기념관으로 변신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일본은 본국에서 1급 스시 장인들을 섭외해 대사관이나 야외에서 귀빈들에게 호화스러운 일식 요리와 사케를 대접한다. 대사관의 행사에 초대받았는지, 일본 관련 행사에 참석했는지 여부는 워싱턴에서 ‘인싸’와 ‘아싸’를 가르는 암묵적인 척도가 되고,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인기를 시험하는 잣대가 된다.

벚꽃 축제가 끝나는 4월 말이면 1주일 이상 연휴가 이어지는 골든위크(Golden Week)를 이용해 일본 정치인과 관료들이 워싱턴에 밀려온다. 워싱턴 싱크탱크 내에서의 미일 관련 정책 포럼과 미국 정부 내 실력자와 정책담당관을 방문하려는 일본 측 인사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벚꽃축제에 맞춰 각종 미술 전시회나 음악 경연대회, 심지어는 본사이(盆栽-화분에 심은 관상용 나무)와 다도(茶道)를 중심으로 미·일 청년들의 교류도 꽃을 피운다.

벚꽃축제는 워싱턴만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등 수많은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는데, 이런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친일이 자연스럽게 미국 전역에 널리 퍼지는 촉매가 된다.

 

친한파 육성을 게을리한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한국의 K팝이나 중국의 판다 외교가 소프트파워의 정점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본의 벚꽃축제를 한 번 다녀오면 아예 클래스가 다르다는 것을 체감한다. 미국에서 한류 콘텐츠를 통해 한국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는 인사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벚꽃축제나 연회는 기본적으로 참석자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먹고, 마시면서 오감을 통해 즐기는 경험이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며 피부로 느끼고 소통하는 소프트파워 외교와 콘텐츠만을 통해 전파되는 외교적 수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이고 오래 이어질지는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이미 고인이 된 국회의원 故 김근태 씨가 오래전 미국의 한 싱크탱크를 방문했을 때의 비화다. 당시 워싱턴의 한 연구소에서 주최한 한미정책 포럼에서 미국인 펠로우가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국과 북한을 마치 일본의 변수인 것처럼 취급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김근태 의원이 갑자기 대화를 끊으며 “아니, 한반도 얘기는 안 하고 왜 계속 일본 얘기만 하시느냐?”라며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물론 한국인의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반응이지만, 책임은 친한파 육성을 게을리한 우리나라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당시 미국인 펠로우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일본어에 유창한 일본통이었다.

최근 한국의 국가 위상이 대폭 높아지면서 한국어나 한국 관련 콘텐츠를 기반으로 중국과 일본을 보는 이들도 늘어났지만, 아직 미국 대부분의 아시아 전문가들이 일본과 중국을 기반으로 동아시아를 연구한 사람들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가 모든 방면에서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치열할 경쟁을 펼칠 필요 따위는 없다. 그러나 필자의 싱크탱크 경험기를 통해 한국의 민간 대미 외교가 그동안 어떤 창의성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작동해 왔는지 자문했으면 한다. 본래 국제관계라는 것은 트랙 1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들이 만들어나가는 트랙 2도 정부 간에 대화 못지않게 중요하다.

대통령이 할 수 없다면 외교부 장관이 나서고, 그마저도 할 수 없다면 주미대사관의 일선 실무자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모두 복지안동(腹肢眼動)으로 버티기 바쁘다. 가장 중요한 혈맹인 대미 외교도 그렇고 대북 문제도 마찬가지다. 용기나 상상력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 싱크탱크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