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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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는 정말 아름다웠다

내가 북유럽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TV프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 노르웨이 오슬로 편을 보고 나서였다. 2012년 2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때 나는 한 달 뒤에 떠나는 영국에서의 어학연수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처음 가는 유럽에 대한 환상과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여행 정보를 많이 찾아보고 있을 때였다.

화면으로 본 오슬로는 여름에 백야가 있고 조용하면서 평화로운 나라였고 나는 그걸 보면서 막연하게 노르웨이도 가봐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영국에 도착하고 나서는 한동안 오슬로에 대해선 완전히 잊고 지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6월 말에 런던 스카브스타 공항에서 오슬로로 가는 싼 항공편을 찾게 됐고 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떠올리며 항공편을 구매했다.

2012년 6월 29일. 런던에서 오슬로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내 옆에 앉았던 노르웨이 할머니는 비행기에 탑승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혹은 처럼 보였던) 나에게 관심이 많으셨고 우리는 비행시간 내내 수다를 떨었다. 오슬로 뤼게 공항(** 오슬로 뤼게 공항은 현재 운영하지 않습니다.)에 착륙할 때쯤 할머니는 “그래, 오슬로에서 숙소는 어디니?”라고 물어보셨고 나는 “없어요. 도착하고 나서 적당히 싼 곳을 찾아보려고요.”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잠깐 표정이 굳으셨고 ”지금 구매하면 비쌀 텐데.”라고 하셨다. 유스호스텔 이용할 건데 뭐, 라고 생각하며 공항 와이파이를 이용해 숙소를 찾았는데 나는 처음에 뭐가 잘못된 줄 알았다. 숙소 값은 내 예상 밖이었다.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Welcome to Norway”

나는 몰랐지만 내가 도착한 날은 노르웨이의 큰 음악 축제 중 하나인 Kollenfest가 시작하는 날이었고, 그다음 날은 Gay Pride가 있는 날이었다. 큰 축제가 두 개나 있는 기간에 도착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남은 숙소 중 가장 싼 숙소는 1박에 7만 원이었다. 사실 이 당시에 나는, 부모님 몰래 여행을 다녔었다. 몰래 다녔기에 여행에 대해서 말할 수 없었고,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행 경비는 항상 30만 원으로 잡았었는데 30만 원 중 10만 원을 이미 비행기 삯으로 쓴 상태였고 맥도널드 세트 메뉴를 통해 확인한 노르웨이 물가는 정말 비쌌다. 결국 경비를 아끼기 위해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의 3박 4일의 여행 중 2박은 노숙, 2박은 숙소에서 자기로 했다. 첫날은 축제에 나오는 다양한 가수들을 보며 그럭저럭 버텼고, 이튿날 정오부터 밤까지 이어진 생애 첫 Gay Pride는 매우 충격적이면서도 재밌었다.

 

노르웨이 도착 첫날 오슬로 길거리 공연 2012

 

셋째, 넷째 날에는 숙소에서 편히 쉬며 오슬로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오슬로의 날씨는 여태까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백야 탓에 밤늦게까지 해가 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가 뜨지도 않았다. 내내 해가 뜨지 않다가 마지막 날에 공항으로 가기 1시간 전 해가 나왔는데, 이때 오슬로는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에서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사이로 해가 나오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점심을 먹었고 영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꿈을 잃은 상실감에 다시 북유럽으로 

어학 연수가 끝나고 1년 뒤, 3학년 학생으로 복학을 했던 나는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우선 대학교에서 남은 3, 4학년을 마치기 위해 학교 생활에 매진했다. 내 주 전공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복수전공은 불어불문학이었는데 복수 전공 학점을 채우기 위해 모든 수강과목을 전공과목으로 꽉 채워서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무렵부터 내 꿈은 쭉 가수였다. 대학교에 간 것도 내가 한국에서 아이돌을 할 것이 아니라면 일반 대학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결과였고, 주 전공도 음악 산업과 그나마 관련이 있는 미디어 쪽을 선택한 것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부터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음악을 배우며 학교를 다녔고 그 결과 2014년 초부터 작은 소속사와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업 생활과 음악을 같이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가 가장 간과했던 건 음악을 배우는 것과 음악을 업으로 삼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전공 공부, 노래, 작곡에 대한 부담, 음악인으로서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컸던 탓인지, 전에 없던 스트레스성 편도염이 만성 수준으로 생겼다. 고민을 하다 편도를 제거했는데 그러고 나니 이상하게 노래를 할 때 목이 아파서 힘들었다. 거기에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슬럼프가 왔고, 여러 고민 끝에 2014년 11월에 가수의 꿈을 포기했다.

꿈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공허함, 그리고 삶의 이정표가 없다는 느낌은 정말 생소했다. 다시 새로운 목표 혹은 꿈을 가지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어느 것에도 음악만큼의 열정이 붙지 않아서 괴로웠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부모님께서 감사하게도 내가 여태까지 받았던 장학금을 네가 쓰고 싶은 대로 써보라며 내게 주셨다.

그때 문득 노르웨이에서 보낸 시간이 떠올랐다. 사실 노르웨이에서 보낸 시간이 엄청 특별하다거나, 좋은 추억들로 가득한 건 아니었다. 좋았던 여행을 꼽자면 차라리 체코나 헝가리 같은 동유럽 여행이 더 좋았는데 이상하게 노르웨이를 다시 가보고 싶었다. 멋지다는 피요르드도 보고 싶었고, 백야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리고 북유럽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걸 짧은 여행을 통해 조금이라도 경험하고 싶었다. 그렇게 노르웨이 및 북유럽 국가를 여행 겸 탐험(?) 하기로 결정하고 스웨덴 (6일) – 노르웨이 (22일) – 핀란드 (8일) 일정으로 2015년 7월 말에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첫 목적지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이었다. 스톡홀름에서 5박 6일을 묶고 노르웨이행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었는데 여행 3일째에 문제가 생겼다. 바로 지갑을 도둑맞은 것이었다. 관광지인 감라 스탄 (구 시가지)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왕궁으로 향해 가고 있는데 가방을 보니 지퍼가 열려있었다.

놀라서 가방을 뒤져봤더니 지갑이 없었다. 나는 여행을 위해 한국에서 2장의 체크카드를 만들어 왔었는데 한장은 여권 지갑에, 그리고 나머지 한장은 지갑에 카드를 넣어놨기에 여행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 지갑엔 신용카드가 들어있었다. 지갑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녀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스웨덴에 대한 내 인상은 정말 안 좋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이미지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나의 안 좋은 인식은 스웨덴 사람들로 인해 다시 바뀌었다. 분실물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고 있었는데, 경찰서 알려준 어르신은 내 사정을 듣고 나를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경찰서로 데려다주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갑을 잃어버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갔던 카페에 들렀는데, 카페 점원 분은 카드 분실신고를 위해 카드사에 전화를 해야 하지 않냐며 개인 핸드폰을 내 손에 쥐어주시고, 집에 갈 때 돈도 쥐어주셨다.

길거리에서 만난 젊은 부부는 데이터가 없어서 종이 지도를 보는 나에게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혹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말했다. 나는 낯선 이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스웨덴 사람들의 이러한 친절함은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나중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친절한 거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스웨덴 스톡홀름 광장

내가 만난 사람들이 매우 친절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친절한 사람이라도 낯선 이방인에게 자신의 개인정보와 재화를 나눠주는 건 이상한데..? 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교육을 받았지? 여기는 이런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가? 내 생각은 스웨덴 개개인에 대한 생각에서 스웨덴 사회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고 나중엔 스웨덴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런 나라에 살면 어떨까? 나도 이렇게 변할까?’라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겼었다.

 

“이왕이면 좋은 나라에서” 이민을 결심하다

스웨덴 다음 여행지는 노르웨이와 핀란드로, 노르웨이 도시인 올레순, 베르겐, 오슬로 그리고 핀란드 헬싱키를 4 주동안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자연경관을 최대한 많이 보기 위해 비행기는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페리, 버스, 기차만 타고 다녔는데 혼자 하는 여행이다 보니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 내내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했다.

 

노르웨이 올레순 전망대에서 같은 호스텔 친구들과 함께 2015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가 없으니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했고,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좋은 나라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싶다’ 였다. 이 결론은 내가 생각하는 좋은 나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는데, 사실 ’ 좋은 나라’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주관적이고 그것을 알기 위해선 그 나라를 장기간 경험해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게 지금 여행하고 있는 북유럽이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에스토니아로 떠나는 페리호 안에서 2015

 

내가 짧게나마 경험한 북유럽 국가는 좋은 나라 같았고, 각종 행복 지수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것도 역시 북유럽이었다. 이왕 살아볼 거 잘 모르는 나라에 제대로 정착해서 오래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이런 모험 심리로 북유럽에서의 이민을 결심했다. 이민을 위해서는 해당 국가에서 살 명분이 필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공부를 더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북유럽에서 바로 일자리를 구하는 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때부터 북유럽 유학을 결심하고 한국에 돌아오고 나자마자 유학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유학지로서의 북유럽 국가의 경쟁력이다. 즉, 북유럽 국가가 유학을 하기 좋은 나라인지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북유럽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 대학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노르웨이에는 오슬로 대학교, 스웨덴에는 웁살라 대학교, 룬드 대학교 등이 있었다.

그리고 학과 교수님께 상담을 요청하고 교수님께 북유럽 유학에 대한 의견을 구했는데, 교수님은 북유럽 교육의 우수성, 북유럽 내 미디어 산업 현황을 설명하시며 북유럽 유학을 추천하셨다. 이 외 유학비용, 생활수준 등 유학 비용과 관련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정보도 얼마 없었지만, 그 당시 나는 ’그 나라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다보면 알게 되겠지’ 라는 간 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여러 대학 중 등록금이 무료인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를 1순위 대학교로 선정하고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대학 지원 서류는 의외로 간단

가장 중요한 지원 과정, 지원에 필요한 서류는 의외로 간단했다. 오슬로 대학교 같은 경우 대학교 포털 (UiO)을 통해 바로 지원을 신청할 수 있었고 지원 포털은 10월 1일부터 열리는데 지원 포털에 필요한 지원 서류를 올려야 한다. 지원 서류는 내가 수강한 모든 과목 및 학점이 나와 있는 성적표, 졸업 증명서 정도, 영어 성적표 (나의 경우 IELTS를 9월부터 1달간 준비해서 10월에 바로 성적표를 받았다)만 증명하면 됐었는데 가장 문제는 노르웨이는 12월 1일 날 지원 포털을 닫는다는 점이었다.

대학 관계자들은 친절하게 학기 마치면 최종 성적표랑 졸업증명서를 보내줘, ’아마’ 될 거야 라고 말했지만 ’maybe’ 는 확실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나는 점점 불안해졌고, 그러던 중 학교 포털을 통해 중 스웨덴 석사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Korea Talent Race를 알게 되었다.

Korean Talent Race는 다음 연도 가을 학기에 스웨덴에 있는 5개 대학교로 석사 진학을 하는 학생 중 우수한 학생을 대상으로 전액 장학금을 주는 제도였고, 지원 기한은 2015년 10월 1일 부터 2016년 1월 15일이었다. 그때가 2016년 1월 초였으니 기한이 매우 촉박했다. 때문에 대학교 및 학과 선택은 하루 만에 했다. (** Korea Talent Race는 2016년 이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우선 공과대학 위주인 샬머스와 린셰핑 대학교는 제외. 너무 북쪽에 있어서 추울 것 같았던 우메오도 제외. 이렇게 해서 웁살라 대학교와 룬드 대학교가 남았는데 두곳 모두 미디어 관련 석사 프로그램이 있었다. 둘 다 지원할까 했는데 룬드 대학교에는 추천서를 내야 했다. 교수님을 찾아뵙고 추천서를 부탁드릴 시간이 없었던 나로서는 웁살라 대학교만 지원을 하기로 했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명문대학 중 하나다

 

스웨덴은 각 대학별로 3개 정도의 프로그램을 지원할 수 있었는데 나 역시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 3개를 골라서 지원했다. 내가 1순위로 지원했던 프로그램인 Digital Media and Society에 내야할 서류가 가장 많아서 여기에 맞춰서 지원 서류를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성적표, 졸업증명서, 영어성적, 지원 동기를 담은 짧은 에세이 그리고 10장 정도 분량의 내가 직접 쓴 아카데믹 에세이를 준비해야 했다.

노르웨이 대학원 지원을 위해 준비했던 성적표, 졸업예정증명서 그리고 영어성적을 제외한 나머지 서류들을 이틀 만에 준비하고 스웨덴의 통합 대학교 포털인 universityadmissions.se에 지원서류를 올렸다.(** 스웨덴의 경우 모든 대학교 학사, 석사과정 프로그램 지원 및 대학교 수강신청을 통합 포털인 universityadmissions.se 에 합니다. 대학교 포털은 강의 자료를 올리거나 과제 제출용으로 이용됩니다.)

그때가 지원 마감 기한 하루 전인 1월 14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쫄깃하다. (** 원래 지원은 1월 15일, 지원서류는 2월 1일까지 낼 수 있지만 코리아 탤런스 레이스에 참여하기 위해선 1월 15일 까지 내야했습니다.)  웁살라 대학교에 지원 후 코리아 탤런트 레이스에도 참가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에세이를 쓰고 퀴즈를 풀었다. 이후 약 세 달 뒤 모든 결과가 나왔다.

오슬로 대학교 불합격. 웁살라 대학교 합격. 코리아 탤런트 레이스는 결승 진출은 했으나 1등은 하지 못해서 장학금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