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 중에 추방 당했다

생활비는 서울에서 자취 수준 

대학원 지원 결과를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슬로 대학교에 불합격한 것도 그렇지만, 웁살라 대학교의 학비와 생활비는 나의 경제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스웨덴 대학교 석사 과정의 등록금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연간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 사이다(디자인, 생물학, 공학 등 특정 프로그램 제외).

생활비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민청에서는 한 달에 약 100만 원 정도를 방값을 포함한 생활비로 잡고 있다(2019년 기준 8,370 SEK). 내가 합격한 프로그램인 웁살라 대학교의 Digital Media and Society의 경우 연간 등록비가 1300만 원이었고, 2년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입학 허가 레터 2016년 5월

 

사실 스웨덴 대학교에서 요구하는 등록금이 한국 대학교의 등록금과 비교했을 때 비싼 것은 아니다. 생활비도 서울에서 자취하는 학생이라면 쓸 법한 수준의 금액이다. 문제는 내가 그 정도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준비를 위해 기다릴 힘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북유럽 유학 및 이민은 내가 음악을 포기하고 나서 스스로 생각해 낸 첫 번째 목표였다.

이후 스웨덴 유학을 위한 절차는 간단했다. 우선 등록금을 내고 스웨덴 내 거주허가증(비자)을 신청했다. 거주허가 신청하기 위해서는 비자 신청비 약 13만 원(1,000 SEK), 이민청이 인정하는 스웨덴 대학교에서 온 대학 합격 편지, 의료 보험, 등록금을 제외하고 대학교를 다닐 동안(나의 경우 2년) 생활비를 충당할 돈이 있는 학생 본인의 생활비 통장이 필요하다.

의료 보험의 경우 스웨덴 대학교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커버해주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생활비 통장의 경우, 부모님 명의 통장은 학생 통장으로 치지 않으며, 2016년도에는 생활비가 들어 있는 통장의 3개월 치 거래내역을 의무적으로 내야 했다.

 

웁살라 대학교,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대학교이다

 

처음 지원을 할 때 2016년 6월에 내 한국 통장으로 이민청이 정한 2년 치 최소 생활비를 넣어놓고 잔고 증명서와 3개월 치 거래내역서를 제출했는데, 비자 지원을 마치고 나서는 대부분의 돈을 부모님 통장에 넣어놨다. 보통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하는 ‘이 행위’는 일부 한국 유학생, 특히 나에게 2017년 중순에서 2018년 말까지 이어지는 지옥의 시기를 선사하게 되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설명하겠다.

그리고 거주 공간은 스웨덴 대부분의 대학교는 국제 학생에게 학생 기숙사를 배정해 준다. 스웨덴 기숙사는 Curfew 등 규칙이 있는 한국 기숙사와는 다른데, 기숙사 건물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몇몇 아파트 단지에 학생 전용 방이 따로 있다고 보면 된다. 웁살라 대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학생 기숙사 단지는 Flogsta, Ekeby, Kantorsgatan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몇 개를 고르면 기숙사 상황에 따라 배정해 준다.

 

기숙사 배정 레터 2016년 7월

 

나는 Flogsta 5동에 배정이 됐고 2016년 8월 1일부터 입주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와 언니와 함께 핀란드와 스웨덴을 여행한 후 2016년 8월 19일 웁살라에 도착했고, 10일 후에 웁살라 대학교에서의 첫 학기를 시작했다.

 

아카데믹한 글쓰기 치중

웁살라 대학교에서의 석사 생활은 한국에서의 학사 생활과는 분명히 달랐다. 한국에서 배운 것은 미디어의 발전 과정, 미디어의 영향력에 관한 다양한 이론, 미디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등 이론적인 부분과 영상 편집, 스토리텔링 실습, 다큐멘터리 제작 등 실용적인 부분을 망라했다.

이와 달리 웁살라 대학교의 디지털 미디어와 사회 프로그램은 심층적이기도 했지만, 매우 이론에 집중했다. 대부분의 필수 강의는 다양한 관점에서의 디지털 미디어와 사회의 관계 및 디지털 미디어의 역할을 심층적으로 배우고, 토론 및 발표 후 이와 관련한 아카데믹 아티클을 개인 과제로 작성하는 것으로 강의가 끝났다.

이 외에는 논문 작성에 반드시 필요한 근거 이론 및 연구방법론 강의를 들었다. 이 때문에 내가 첫 학기에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것은 바로 아카데믹한 글쓰기였다. 제대로 된 아카데믹 에세이는 한 번, 그것도 한글로 작성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웠고, 첫 학기 첫 사이클에 있는 두 과목에선 낙제를 받기도 했다.

여기서 사이클이란, 한 학기를 두 기간으로 나눈 것을 뜻한다. 스웨덴 대학교의 경우 넉 달 가량의 학기를 첫 번째 사이클, 두 번째 사이클로 나누고 듣는 과목 수도 제한한다. 대다수의 학생이 한 학기에 들어야 하는 학점이 30hp(högskolepoäng, credits)인데 보통 첫 번째 사이클에 15hp, 두 번째 사이클에 15hp를 나눠서 듣는다.

내가 낙제를 받았다고 해서 과제 제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과제는 모두 통과를 했는데 개인 과제인 에세이 작성에서 낙제를 받았기 때문에 해당 과목에서 낙제를 받았다. 이것 역시 스웨덴 대학교의 특징이다. 사실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 낙제라니.. 낙제라니?? 우선 낙제를 받은 것이 충격이었고 후엔 낙제를 받은 게 비자를 발급받을 때 문제가 되나 싶어서 걱정되었다.

나중에 해당 과목 교수님과 면담을 했는데 교수님은 내 문제점은 분석 부분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분석을 토대로 내 의견을 피력하는 부분이 불분명한 점이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다른 문제는 없으니 아카데믹 라이팅 리뷰를 해주는 학교 기관이 있으니 그 기관과 상담을 해보라고 하셨다. 무엇보다 재시험 제도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 또한 스웨덴 대학교의 특징인데 재시험을 통과할 때 까지 볼 수 있다.

물론 국제 학생의 경우 특정 학점 이상 통과점을 받아야만 거주 허가(비자)를 받을 수 있기에 웬만하면 첫 번째 재시험/과제 다시 제출에서 통과하지만 학생 개인 사정으로 계속 시험을 못 보거나 과제를 제출하지 못한 경우엔 나중에 시기에 맞춰 해당 시험만 다시 치르거나 과제만 제출하면 된다. 재시험은 보통 학기 말에 있다. 나는 아카데믹 라이팅 리뷰를 통해 내 문제점을 고치고, 첫 번째 학기가 끝나기 전에 두 가지 과제 모두 통과했고 남은 학기 동안은 라이팅 관련 문제는 없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문제는 졸업, 그리고 그 후 취업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대학원 졸업 후 취업을 목표로 스웨덴에 왔기에 취업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얻으려고 노력했다. 우선 졸업의 경우, 석사 학위 취득을 위해서는 당연히 석사 논문을 써야 하는데 대부분 2학년 1학기 전후로 논문에 대한 준비 및 물밑 작업을 시작한다.

논문은 개인적으로 리서치를 해서 쓰는 방법과 기업과 연계해서 쓰는 방법이 있었다. 기업과 연계해서 논문을 쓰게 되면 소정의 금액을 받게 되고 논문 작성이 끝난 후에 해당 기업에서 취업이 될 확률이 높아서 나도 기업과 연계한 논문을 쓰고 싶었지만, 보통 엔지니어링 학생들이나 통계 학과 학생 등은 이렇게 하지만 미디어를 전공한 나의 경우 논문을 기업과 연계해서 쓰는 건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그쪽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학교에서 정해준 지도 교수님 프로필을 읽고 내가 쓰고 싶은 분야와 맞는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교수님은 내 제안에 긍정적으로 답변을 주셨고, 교수님의 지도로 논문을 무사히 작성하고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취업하기 위해서는 스웨덴어 필수 

내가 취업에 관한 정보를 물어볼 때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바로 스웨덴어의 중요성이었다. 대다수의 스웨덴 사람들은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해서 영어로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스웨덴어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스웨덴어를 하지 못하면 기업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웨덴어에 가장 시간을 많이 쏟았다.

스웨덴에서 1년 이상 거주하는 유학생의 경우 스웨덴의 주민번호 격인 퍼스널 넘버(보통 PN이라고 한다)를 받을 수 있는데 이 PN이 있으면 스웨덴의 기초자치단체인 코뮨(Kommun)에서 제공하는 스웨덴어 코스를 기초부터 고등학생 과정까지 무료로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나도 2017년 6월경부터 웁살라 코뮨에서 스웨덴어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현재는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듣고 있다(C1 수준). 스웨덴어 외에 중요한 것은 바로 일 경험이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충고를 받았다. 한국에서조차 취업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스웨덴 내에서 일 경험 쌓기는 매우 어려운 퀘스트처럼 느껴졌다.

우선 많은 사람이 경고 한 대로 많은 아르바이트 및 인턴십 공고는 스웨덴어로 되어 있었고 대기업에서 하는 인턴십은 대부분 인턴십 시작 6개월에서 8개월 전에 모집이 끝났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2017년 4월이 되고서야 인턴십을 찾아보기 시작한 나의 경우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았다. 내가 최종적으로 하게 된 건 정말 초초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서의 인턴십이었다.

인턴십은 Full-time에 무급이었고, 2017년 5월부터 한 달간 일을 했다. 나는 이 경험을 계기로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난 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졸업 후 취업을 위한 준비를 2학년 1학기부터 하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나의 이런 다짐은 비자 문제가 터지면서 바로 사라졌다.

 

생활비 통장 임의로 출금은 주의해야 

스웨덴의 경우 유학생에게 2년짜리 거주 허가(비자)를 주지 않는다. 2년짜리 프로그램을 듣는 학생들은 1년 거주 허가를 받고, 거주허가 기한이 끝나기 전에 연장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도 처음 거주 허가를 신청했을 때 유효 기간이 2016년 8월 17일(스웨덴 입국일)에서 2017년 9월 1일인 1년짜리 거주 허가증을 받았다.

모든 비자가 그러하듯 비자 유효 기간이 끝나기 전에 지원하고, 그 당시 이민청은 2015년에 일어난 난민의 대거 유입으로 업무량이 매우 늘어나 거주 허가 발급 소요 기간이 매우 길어진 상태였다*. 나는 2017년 7월 중순에 거주허가 연장 신청을 했다.

연장에 필요한 서류는 나의 지난 1년간 학업 성적표(1년간 특정 학점 이상 이수), 수강 신청 내역(다음 학기에 들을 과목에 배정이 되어있다는 증거), 여권 스캔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가 남은 1년동안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금액이 담긴 내 통장의 거래내역서를 내야 했다.

나는 부모님께 부탁을 드려서 이민청에서 요구한 금액을 넣어놨고, 부모님은 1년 전에 했던 대로 그 금액을 증명서 신청을 할 때만 넣어놓고 바로 부모님 통장으로 금액을 다시 빼셨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이민청이 통장 잔고 증명 및 거래 내역서를 다시 내라고 할 때까지는. 이미 생활비를 위한 금액을 넣어놨다가 출금을 다시 하는 행위는 매우 문제가 되었다. 나는 이민청에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했고, 거기다가 이민청과 만들지 말아야 할 갈등을 만들었다.

비자 신청을 한 지 2개월이 지나고 난 후 나와 스웨덴에서 만난 남자친구네 가족들은 이민청에 독촉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내 전화를 받은 이민청 사무실 책임자는 내가 이민청을 비웃은 것이라고 착각해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대체 왜…?).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내 거주 허가 신청은 거절당했다. 이로써 스웨덴에서 공부를 마칠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가 불투명해졌고, 나는 스웨덴에서 비자 발급 여부가 결정 나기 전까지는 스웨덴 밖은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법조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는데, 웁살라 대학교의 경우 국제 학생 비자 관련한 문제를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없었다. 스웨덴 한국 대사관에도 물어봤지만 대사관에서 알려준 변호사는 내 연락을 무시했다. 그래서 나는 직접 발품을 팔면서 변호사를 찾았다. 이민청 법원은 내가 거절을 받은 2017년 9월부터 판결 절차를 시작했고, 내가 프로그램을 마치고 학위 수여 예정 증명서를 받은 바로 다음 날인 2018년 6월 30일 내 항소를 거절했다.

 

2017년 9월 이민청 비자 첫 거절 통보

 

법원에서 상고 거절 통보를 받고서는 계속 힘들었다. 좋은 변호사를 만나서 대법원에 항소를 하긴 했지만, 내가 스웨덴에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이기에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 힘들었다. 당장 내일 거절 통보가 나올 수 있는 상태에서 취업 및 미래 계획을 세울 정신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내가 오래전부터 듣고 싶었던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변호사 출신 VD(Verkställande direktör, CEO)님은 원래 국적 때문에 자격이 안 되는 나를 취업 프로그램에 넣어주시고 법 관련 어드바이스도 해주셨다. 이 프로그램은 5월 중순에 시작이 됐는데 이 프로그램 자체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일 내내 하는 프로그램이라 논문이랑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원했던 스웨덴 대외 협력처(Svenska institutet)에서의 인턴십에 합격해서 뿌듯했다.

 

스웨덴의 사무실 분위기

 

인턴십은 2018년 8월 20일부터였다. 처음엔 스웨덴어로 하는 인턴십이 힘들었지만 스웨덴어는 노력을 했던 덕분이지 빠르게 나아졌고 이런 내 노력을 좋게 보셨는지 나는 점점 실무에 가까운 업무를 맡아서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때가 2018년 9월 10일이었다. 정말로 즐겁게 일을 하고 있는데 이민청에서 이메일이 왔다. 뭔가 해서 열어보니 대법원에서 내 항소를 거절했고 추방을 하기로 했으니 1주일 내로 스웨덴을 나가라는 것이었다.

변호사는 이민청에 전화를 해서 항의를 했지만 결국 2018년 9월 12일, 추방이 확정되었다. 오늘이 2019년 9월 12일이니까 정확히 1년 전이다. 추방 명령이 확정되고 나서 스웨덴 대외 협력처와 이에 대해 상담을 했다. 스웨덴 대외 협력처에의 인턴십은 내가 스웨덴에 다시 돌아오면 다시 하기로 하고 나는 2018년 9월 17일 스웨덴을 떠났다.

 

정희나
작가 | 스웨덴 대외 협력처 인턴으로 일하고 있으며, 안정된 취업과 이민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