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프리카로 … 훌쩍 지난 6년

활동가에서 총괄 매니저로 

디피링 마을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낸 후, 레소토에 더 남아있기로 했다. 당시 나와 함께 아프리카에 파견됐던 대부분 활동가들은 2년의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갔다. 하지만 내 결정은 조금 달랐다. 아직은 젊음이 주는 혜택을 더 누리고 싶었다. 인생을 길게 봤을 때 2년이라는 점을 찍었을 뿐, 연장선으로 이어나가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몇 년을 더 경험하고 싶었다.

잠시 한국에 들어와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여러 개발 NGO나 종교단체에서 아프리카로 파견돼 개발사업을 담당하는 자리는 많았다. 그러나 내가 간절히 돌아가고 싶었던 ‘레소토’로 파견하는 기관은 없었다. 2년 동안 만나고 함께 일한 사람들과 연결고리를 찾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레소토를 고집했다.

몇 달이 지나,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내가 몸 담았던 브릿지 사업을 확장한다는 소식과 함께 전체적인 사업을 총괄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체없이 지원했다. 필기시험,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했다. 그리고 2013년 5월 다시 레소토로 돌아갈 수 있었다.

프로젝트 매니저의 신분으로 돌아온 레소토에서의 생활은 많이 달랐다. 활동가 신분이 아닌, 전체적인 사업 총괄 담당자로서 수도 마세루에 거주했다. 출근 역시 협력기관인 레소토 국가위원회를 오갔다.

기존의 활동가들이 담당했던 사업장을 유지함과 동시에 새로운 사업장 두 곳을 발굴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내게 가장 중요했던 자세는 ‘나 혼자만의 사업’ 혹은, ‘한국의 사업’이 아닌, 레소토 국가 내부의 파트너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사업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지역 주민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교육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도,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위한 것도 아닌 결국 레소토를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나만의 확실한 신념을 정립한 후, 레소토 교육부와 유네스코위원회와 긴밀한 협업을 중시하며 사업을 진행했다. 다행히 교육부의 협조는 순조로웠다. 그동안 서구 다른나라들로 부터 수많은 원조를 받아왔지만, 일방적인 지원이 아닌 주민과 가까운 곳에서 사업을 만들고 주민의 참여를 중요시하는 브릿지 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레소토 정부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디피링 마을에 이어 도움이 절실한 지역마을 두 곳을 선정할 수 있었다.

 

들판에 90명의 꿈을 심다

수도 마세루에서 비교적 가까운 마을인 무추마을 (Ha-Motsu) 은 굽이굽이 가파른 산길을 달리다 나타나는 동네다. 전기와 수도 시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설치한 공용 물 펌프 시설 역시 고장 난 채 오랫동안 방치될 정도로 열악했다. 차로 30분 정도 나가면 모든 서비스가 갖춰진 도시가 있다. 가까운 곳에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하는 마을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에도 아이들은 존재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은 존재하지 않았다.

디피링 마을과 똑같이 만 2~5세 유아의 학부모들을 조직하고 학부모 운영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무추마을에서는 이미 소규모로 유치원 교육이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잘 아는 마을 교사가 본인의 작은 집에서 아이들을 위해 무료수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유치원 교사와 정부관계자 들과 함께. 2015

 

우리 역할은 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레소토에서 유치원 사업으로 모범사례가 돼보자는 꿈을 갖고 건축사업을 시작했다. 주민의 의견을 모아 지역학습센터 부지를 선정하고 마을 건축가를 고용했다. 확실한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있던 무추 마을 대표의 주도하에 주민은 힘을 보탰다.

외부의 적극적인 도움에 대한 주민의 답례였을까. 주민은 벽돌을 사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활용 가능한 ‘돌’을 모으기 시작했다. 건축가의 보조 역할도 마을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채워졌다. 약 6개월의 시간이 지나자 바닥공사와 건물 외부 벽돌 공사가 마무리되고 지붕까지 설치됐다. 또 다시 6개월이 지나고 무추마을 유치원으로 사용될 지역학습센터가 완공됐다.

 

무추마을 유치원 외경. 2015

 

완공 소식과 함께 또 다른 기쁜 소식이 찾아왔다. ‘현대’의 식품사업을 담당하는 현대그린푸드에서 아프리카 지역의 아동을 위한 교육 개발사업에 지원하고 싶다며 제안을 했다. 무추마을의 유치원이 완공된 시점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사업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무추마을 유치원 내부 모습. 2015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대규모 원조에도 반복되는 빈곤의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다. 그 결과, 단순히 식량을 지원하기보다 교육사업을 중심으로 근간을 바꾸자는 사업 이념이 확립됐다. 현대그린푸드는 위원회의 사업이념에 공감했고 유치원에 급식시설이 있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던 것이다. 그렇게 ‘급식소 건축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급식시설 건립부터 식품 지원사업까지 총 2년을 계획했다.

순조로운 시작과 달리 진행이 쉽지만은 않았다. 먼저 전기와 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골 마을에 급식소를 설치하자니 어려운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기가 없는 마을에 싱크대와 냉장고를 설치하는 게 가능이나 할까. 식수도 없이 아이들을 위한 보건, 영양, 위생 교육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주방에 필요한 전기와 급식소 운영에 필요한 상하수도를 갖춰야만 했다.

 

무추마을 급식소 문을 연 날 축하파티 2015

 

최선의 방법으로 태양광 자가발전장치를 설치해 전기 및 수도시설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주민들의 관리, 감독 아래 설치가 완료됐다. 싱크대가 완성되고 부엌기기들을 들여놓자 제법 구색이 갖춰졌다. 하지만 식재료 조달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구멍가게도 찾아볼 수 없는 시골 마을에서 음식재료를 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매일 30분씩 차를 타고 도시로 나가 식재료를 구해오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이 방법은 효율적이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았다. 현대그린푸드의 사업지원이 끝난 후에도 급식소가 원활하게 운영될지 미지수였다.

‘지속해서 급식소를 운영하기 위한 재료 조달 방법은 없을까?’ 끊임없이 질문했다.

무엇보다 교육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주민들이 농작물과 가축을 길러 스스로 자생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했다. 그렇게 주민의 먹거리 생산을 위한 교육이 시작됐다. 더 나아가 다른 지역과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마을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교육도 동시에 진행됐다. ‘교육’이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닌, 스스로 자립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년에 걸쳐 유치원과 급식소가 완공됐다.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어떻게 건물을 짓지?’, ‘전기와 수도시설이 없는데 급식소를 어떻게 만들지?’ 여러 의문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마을을 위한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지로 우리는 하나씩 차근히 만들어 낼 수 있었다. 2013년 12월, 어느 교사의 집에서 5명으로 시작된 유치원이 2015년 9월 급식소가 완공된 후 90명을 넘겼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은 허허벌판이 아이들을 위한 꿈의 터전이 됐다. 

 

주인의식은 마을 발전을 위한 첫 걸음이다 

무추마을의 사업이 한창이던 2014년 3월, 세 번째 사업장으로 떼꼬마을(Ha-Teko)이 정해졌다. 약 6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수도 마세루에서 가까웠지만, 도시의 화려한 전깃불과 편리한 수도는 이곳에서부터 끊겼다. 저녁 무렵, 마을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저 가까이서 도시의 불빛들이 밝아온다. 그와 반대로 촛불로 빛을 밝혀야 하는 떼꼬마을의 어둠은 더욱 깊어만 갔다.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떼코마을 풍경 2015

 

이곳에서 우리가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도심과 가깝고 풍부한 자원이 있었음에도 멀리 떨어져 있는 오지보다 발전이 더뎠다. 가지고 있던 마을 광물자원마저 도시에서 온 개인 사업가들의 배만 불렸다. 정당한 보상과 대가를 받지 못한 채 마을은 자원을 빼앗겼다. 계속되는 공사로 발생한 소음과 매연도 주민을 괴롭혔다.

더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건 부당한 처우를 주민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왜 자원을 빼앗기고 있는지’,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대가가 뭔지’, ‘마을발전을 위해 자원을 어떻게 이용할지’. 주민 중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개인사업자와의 거래를 직접 관리하는 마을 대표 역시 어떠한 요구나 질문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바로 이곳에 ‘교육’이 필요하다며 생각을 모았다. 주민으로서 정당한 주인의식이 없이, 그것을 되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주민이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지게 해야 했다. 연대감과 공동체 의식으로 하여금, 변화를 이끌어내야 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마을 대표였다. 주민을 조직하고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는 마을 대표의 의식개선이 우선이었다. 레소토 정부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와 수차례 면담과 회의를 할 수 있었다. 마을 대표의 변화가 찾아왔다.

 

떼코마을 주민회의 2014

 

그는 마을 대표로서 주민의 불만과 의견을 한데 모으기 위해 힘썼다. 이를 바탕으로 공공자원을 훼손한 개인사업자들에게 정당한 요구와 대가를 요청하기로 했다. 그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 ‘왜 마을의 발전을 위해 자원이 필요한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해야 했다. 대표 만의 사익이 아닌, 주민들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것에 무엇이 있을지 모두가 함께 논의했고 답을 찾았다.

마을에는 초등학교가 전부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유아들은 교육을 받지 못했다. 중, 고등학교에 다녀야 할 청소년들은 도시에 나가지 못하고 마을에 남아 빈둥거리는 삶을 살았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많은 성인은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가축을 돌보며 술과 담배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주민 모두의 희망을 품어다 줄 수 있는 학습공간을 함께 만들기로 했다. 건축에 들어갈 광물이 필요했다. 전기시설 구축과 수도시설 건설까지 포함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했다. 당장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 요구 덕에 ‘벽돌’을 받기로 합의했다.

떼꼬 마을에서의 사업은 준비단계에서 특히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심에서 더 멀고, 풍부한 지역자원이 없던 디피링 마을과 무추 마을의 주민은 마을 발전을 위한 의지와 열정이 있었다. 이곳은 달랐다. 당연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뭔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점이 뭔지 한 번도 고민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의지와 열정을 요구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떼꼬 마을 주민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필요했다. 매일을 건축현장에서 일하는 마을 청년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마을의 비전과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있는 희망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 많은시간이 소요 됐지만, 청년들의 마음은 다행히 움직였다. 개선 의지를 보였고 열정과 의지를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1년의 기나긴 건축 사업이 끝나고 2015년 9월, 마을 주민을 위한 학습공간이 완성됐다. 오전에는 유아들을 위한 유치원으로, 오후에는 성인 여성을 위한 한 재봉틀 교실로, 해가 지고 난 저녁에는 소몰이를 끝내고 돌아온 성인 남성들을 위한 문해 교실로 이용됐다. 조금은 더뎠지만 주민들 스스로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떼꼬마을에서의 사업은 시간이 지나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힘든 사업이 끝나고 함께 담소를 나눴던 마을 청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마을의 가장 큰 변화요? 우리 마을 발전을 위해 모두가 참여하는 주인의식이에요!’

 

이 곳을 떠나도 좋겠다

처음 2년은 활동가의 신분으로 레소토 시골 오지마을, 디피링에서 주민과 함께 하는 자원 활동을 경험했다. 그 후, 레소토 정부 관계자들과 더 큰 목표를 갖고 새로운 마을을 찾아 마을 주민들을 위한 지역학습센터 건축사업을 담당했다.

건축사업에 경험이 많은 외부 건축업자를 고용했다면 쉽게 진행됐을 거다. 주민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은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시간이 걸리고 건축에만 1년이 지났다. 학교가 만들어지고 나서 교사를 찾는 데 또 다시 1년이 걸렸다. 학생들을 모으고 주민이 필요로 하는 수업을 준비하는 데 또 다른 시간이 소요됐다.

많은 과정을 거치며, 무엇보다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은 ‘공들여 세웠던 탑들을 우리가 떠난 뒤에도 어떻게 꾸준히 유지할 것인가’ 였다. 그러기 위해 유치원 교사들의 월급이 꾸준히 제공돼야 했다. 레소토 정부의 도움이 절실했다. 레소토의 교육은 초등학교부터 무상으로 제공된다. 유치원은 사립으로 운영됐기에 정부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교육부 관계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한 끝에 브릿지 사업으로 진행된 레소토의 3개 유치원 모두 지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떼코마을 유치원 소풍 날. 2015

 

유치원 교사들의 월급이 정부를 통해 지급됐다. 더불어 교사들은 정부에서 제공하는 연수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직접 보고 경험하며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데 총 6년의 긴 시간이 소요됐다.

 

레소토 정부에 모든 유치원이 공식 등록된 소식과 함께, 이곳을 떠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사랑과 정을 나눈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떠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언제 닿을지 모를 다음 인연을 기약하며 레소토와 헤어짐을 맞이했다.

 

 


* 윗글의 사진 저작권은 김문주 님에게 있습니다.

 

 

김문주
국제활동가 | 아프리카에서 20대의 절반이 넘는 7년을 살았습니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지 아프리카 지역 주민들을 위한 교육관련 사업을 담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