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보츠나와 공무원 김문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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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정된 나라 

레소토에서의 약 6년의 세월을 마무리할 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측으로부터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 사업을 확장하면서 새롭게 파트너로 일하게 될, 이웃 나라 보츠와나에서 사업의 초기 진행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츠와나’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유혹했다. 대학원 입학을 잠시 보류하면서 보츠와나로 건너가기로 하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경제상황이 가장 안정된 나라
다이아몬드 생산 가치 세계 1위

한국보다 부정부패 지수가 적은 나라
야생동물의 왕국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높은 곳
조직과 체계가 잘 갖춰진 곳

 

보츠와나로 떠나기 전 여러 경로를 통해 새로운 목적지에 대해 공부했다. 같은 남부 아프리카에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내가 지내온 레소토와 다른 점들이 많았다. 그렇게 보츠와나에 대한 새로운 환상과 이미지를 꿈꾸며 레소토에서 차로 약 10시간을 이동하여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보츠와나 위치 (출처 : 구글 지도)

 

나는 보츠와나 정부 교육부 내 공무원 신분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교육부 본부로 매일 출근했다. 우리의 사업 파트너인 보츠와나 유네스코 국가위원회가 중앙정부 교육부 내 하나의 부서로 속해 있었던 덕에 나 역시 공무원 신분을 가지게 됐다.

 

보츠와나 수도 가보로네 Three Diktosi (세 부족장) 동상

 

아프리카에서 이미 많은 발전과 성장을 이룬 곳이기에, 낯선 곳에서의 괜한 걱정과 우려를 하지 않았다. 기대가 클 수록 실망이 크다고 했던가. 야속하게도 옛말은 잘 틀리지 않는다. 약 2주 동안 집을 찾기 전까지 도심 중간에 위치한 4성급 호텔에 편히 머무를 수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내 집을 찾아야 했다. 

 

보츠와나 모레미 국립공원의 코끼리떼

 

교육부 직원들의 도움으로 여러 곳을 방문했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언제까지나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기에 혼자서 부동산을 직접 방문하여 집을 알아봤다. 그러다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적당한 가격과 위치에 있는 집을 발견하였고 그곳을 직접 찾게 되었다.

처음 집을 확인하러 갈 당시, 젊은 남자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보수가 덜 끝난 내부를 보여주었다. 공사가 끝나는 동시에 모든 필요한 가구를 구비해 준다는 조건으로 그 집과 계약했다. 그리고 며칠 후, 주인의 요청에 따라 저녁 6시가 넘어 모든 짐을 들고 이사를 진행했다.

 

공무원으로 와서 무단 침입자로 쫓겨난다고?

이미 해가 지고 어두운 밤, 집에 도착하니 계약한 남성 2명은 없고 처음 보는 여성 한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 내부 수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약속한 소파, 침대, 냉장고 등 가구들은 하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믿고싶지 않은 현실과 마주하기란 쉽지 않았다. 정신이 드는대로 자신이 주인이라고 말하는 여성에게 상황 설명을 부탁했다. 이대로 이사할 수 없다고 정중히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여성은 되레 윽박을 질렀다. 본인이 집주인이며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이사 오는 날짜에 맞춰 공사를 끝 내느라 공사비가 더 많이 들어간 것을 강조했다. 당장 월세를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말투와 억양에서 보츠와나 출신이 아님을 짐작했다. 알고 보니 케냐에서 온 외국인이었다. 나는 같은 외국인으로서 타국에서 집을 구하는 어려움을 본인도 알지 않느냐고 물어보며 상황 해결을 위해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나의 부탁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심한 말다툼으로 번졌다. 혼자 집을 구하는 앳된 20대 동양 여자를 상대로 어떻게든 사기치려는 뻔뻔한 그녀의 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언성을 높이게 되었고 집주인은 결국 경찰을 불렀다. 나를 주거 무단침입죄로 고소한 것이다.

보츠와나에 와서 1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경찰서에 피의자로 입건됐다. 밤 10시가 훌쩍 넘긴 시점이었다. 경찰서에 도착하고 사건진술서를 3장 가까이 작성했다. 그리고 보츠와나 교육부에서 사업의 파트너이자 상사 역할을 해 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토요일 저녁, 집에서 가족들과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던 그녀는 곧장 경찰서로 발걸음했다. 약 2시간이 넘는 조사가 끝나고 나는 당연히 무죄로 풀려날 수 있었다.

경찰들은 다행히도 내가 하는 앞뒤 상황에 경청했다. 실제 주인이 아니었던 2명의 남자들을 만나 다른 조건과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밖에 없었다는 말을 듣고 무죄를 판명했다. 나중 알려진 사실은 처음 거래를 진행한 남성 2명 중 1명은 집주인 여성의 남편이었다. 그들은 초범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외국인 청년을 상대로 여러번 사기를 쳤다고 한다. 

경찰서에서 오랜 기다림과 조사과정을 견디고 자정이 넘은 시각 밖을 나오니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소중한 나날에 눈물보다 웃음이 많았다. 젊은 동양인 여자가 혼자 집을 구한다는 이유로 사기 당했다는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교육부 직원은 이런 나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다 눈물을 그칠 기세가 보이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반드시 명심하거라. 너는 보츠와나 교육부의 공무원으로 일을 하게 됐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하여 보츠와나에서 일 하는 사람이다. 만약 오늘 너의 행동과 실수로 경찰서에 입건이 된 사실이 나의 상사, 교육부 장관에게 알려지게 된다면, 너는 당장 짐을 싸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 발 들인지 얼마나 됐다고 나는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건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왔지만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오늘 내가 저지른 실수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인가. 이곳에서 나는 기댈 곳이 없는 건가. 모든 짐을 들고 호텔 방으로 돌아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짧은 치마 옷차림 지적당하며…

공무원의 신분으로 일한다는 것. 내게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동료들과의 화합을 이루고, 주어진 업무를 하나씩 해결하면 장땡이라 생각했다. 이곳에서 요구하는 공무원으로서 자질과 태도는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달랐다. 잡음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터졌다. 

 

보츠와나 유네스코 국가위원회 집행위원회 위촉식 행사 2016

 

무릎이 올라오는 치마를 입거나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날, 당시 상사였던 보츠와나 국가위원회 사무총장님으로부터 옷차림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보츠와나는 가부장제 문화가 뿌리 깊숙히 박혀있다. 게다가 우리 부서 여섯 명의 여성 중 세 명이 남편에게 버림받고 홀로 자식을 키우고 있었다. 어떤 날은 가부장제 전통의 일부인 ‘결혼 지참금’에 대해 반대했다가 남자와 남편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는다며 크게 혼난 적이 있었다. 사소한 문화 차이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소한 것들이 쌓여 이곳에서 요구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올바른 자세와 태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정해둔 규칙과 규범이 있다면 집요하게 캐묻기 보다 묵묵히 따르길 원했다.

‘이방인으로서 나의 서툰 모습과 실수들을 처음이니까 봐주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일 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엄연한 국가의 정부기관이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 기관에 나는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맞춰하는건 당연했다.

나는 당당한 보츠와나의 공무원으로, 그들의 일부로 인정받고 싶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을 새삼스레 몸소 느꼈다.

 

“그래, 얼마 갖고 오셨어요?”

보츠와나에서의 첫 회의에 일어난 일이다. 앞으로의 사업을 이끌어 나갈 관계자들이 모여 위원회 결성을 논의했다. 사업담당자로서 내가 속해있는 교육부 주도로 교육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다른 정부 부처들인 지방정부부 (Ministry of Local Government)와 보건복지부 (Ministry of Health)가 협업에 참여하게 됐다.

 

보츠와나 정부 관료들과 첫 회의 2016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위한 교육정책을 만들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부 뿐만 아니라 다른 정부 부처의 역할도 중요했다. 특히, 여전히 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시골을 관할하는 지방정부의 도움과 유아교육 사업에 필요한 교육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했다.

이날 나의 역할은 전반적인 사업 기획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레소토에서 쌓아온 성공 사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교육사업을 소개했다.

우선 레소토 주민을 대상으로 유아교육부터 문해교실, 그리고 직업훈련 교실로 이어나간 사례를 읊었다. 주민주도형 사업 모델을 강조하며 성공 이유를 분석했다. 성공적인 사업을 위해 보츠와나 정부 부처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부탁을 끝으로 발표를 마쳤다.

브리핑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내가 받은 첫 질문은, “사업 소개는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브릿지 사업이 우리 보츠와나에 가지고 오는 사업 예산이 얼마입니까?” 였다.

아차, 내가 우려했던 질문이 바로 첫 질문으로 나왔다. 회의장 안의 17명의 모든 눈빛이 내게 집중되었다. 당황한 기색을 잠시 숨기고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네. 저희 사업비 규모가 적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러나 이 금액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반드시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보츠와나에 편성된 사업비 규모는 50,000 USD (약 5천만 원)입니다.”

“지금 숫자를 잘못 말씀하신 것이지요? 0을 하나 제외하고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들고 있던 볼펜을 테이블 위에 던져 내리며 코웃음을 치는 모습들이 보였다. 몇몇 참가자들이 그 분위기에 무게를 더했다. 

“그 돈으로는 교실 하나도 건축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레소토처럼 학교를 직접 만드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순식간에 홍조가 온몸을 빠르게 타올랐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질문이지만 내가 이 상황을 피하려고만 했던 나머지, 대처 방안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도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사실 이번 보츠와나에서 브릿지 사업을 시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사업의 경우 한국 정부와 교육부 지원으로 진행되는데요. 한국 정부는 아프리카 지역 중에서도 가장 발전이 더딘 빈곤 국가들을 지원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새로운 파트너 국가로 보츠와나가 선정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다른 파트너 국가들에게 모범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례를 만들고 싶었으며, 이를 보츠와나 정부와 함께 협력해 나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 네가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첫 회의가 끝나고 시계를 바라봤다.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진이 빠진채 사무실로 돌아왔다. 첫 회의에서 보인 부족한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얼굴은 빨갛고 몸은 굳어있는 나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수억 원의 원조금액을 지원하는 서양권 개발 단체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사업 규모는 굉장히 초라했다.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사업 규모를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실을 밝혀야 했던 순간, 그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회의가 끝난 내내 ‘작은 규모 때문에 우리 사업이 등한시 되는 건 아닐까’, ‘오늘 모인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다음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어쩌지’하며 끙끙 앓았다. 

속앓이가 요란스럽던지 메 디네오(보츠와나 유네스코 위원회 교육담당자)가 나를 보고 말했다. 

“왜 네가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는 우리나라의 교육사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직접 찾아왔어. 앞으로 너희가 돕고자하는 오지 마을 주민은 결국 보츠와나 국민이야. 보츠와나 정부가 돕지 못한 부분을 그들은 기꺼이 도우려할거야”

“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개선하는건 결국 우리 정부와 공무원들의 역할과 책임이야. 그 역할을 타국에서 돕겠다는데 얼마나 고맙겠어. 보츠와나 정부에서도 너희들이 영원히 우리나라에 남을 것을 기대하지 않아. 결국 사업이 지속되려면  바로 오늘 모인 공무원들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그들도 그걸 알고있어”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난 순간, 마음에 가득했던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한민국 대표라는 강박에 혼자서 모든 것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착각했다. 반드시 많은 예산을 보츠와나로부터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레소토에서 경험하지 않았는가. 돈이 행복을 보장할 수 없듯, 발전 사업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결국 마을을 바꾸는건 ‘돕고자하는 마음’과 ‘극복하려는 의지’이었다.

심란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회의를 되돌아봤을때 보이는건 어벙벙한 내가 아니었다. 회의 내내 발전 사업을 하나하나 꼼꼼히 따지던 보츠와나 공무원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나를 비행기 타고 날아온 낯선 이방인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진지한 협업파트너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이들과 치열하게 일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했다. 이곳의 공무원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과 앞으로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솟구쳤다.

 

 


* 윗글의 사진 저작권은 김문주 님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