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천국’ 이런 직장에서 일해봤어?

66

대외협력처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내가 인턴으로 일했던 스웨덴 대외 협력처(혹은 스웨덴 대외 홍보처. Svenska institutet, The Swedish Institute)는 외교부 산하에 있는 기관(public agency)으로 스웨덴을 다른 나라에 홍보하고, 대외 관계를 형성, 유지 및 강화하기 위해 문화, 교육, 과학,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한다(Svenska institutet, 2019).

스웨덴 대외 협력처는 4개의 대부서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국제 관계부서 (Avdelningen för internationella relationer, Department for International relations), 그중에서 Talent Attraction 담당 부서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내가 스웨덴에서 학교를 다니는 2년 동안 스웨덴 대외 협력처에서 디지털 앰버서더 (Digital Ambassador)로서 스웨덴 교육 및 스웨덴의 가치를 홍보했던 경력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자리였다.

 

내가 인턴으로 일했던 스웨덴 대외협력처 사무실 모습 (출처 : 대외협력처)

 

무엇보다 스웨덴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은 개인 자격으로 인턴을 하기가 힘든데, 추방을 당하기 전에는 내가 했던 프로그램인 Korta Vägen에서 지원을 해줬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스웨덴에 다시 돌아왔을 땐 스웨덴의 노동청인 Arbetsförmedlingen을 통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참고로 이러한 지원을 받으려면 스웨덴의 주민번호인 PN (Personnummer, Personal number)이 있어야 하고, 이 번호는 스웨덴에서 365일 이상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나는 2018년 12월 21일 스웨덴으로 돌아왔는데, 12월 중순부터 1월 초는 스웨덴의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사람들이 휴가를 가기 때문에 관공서 및 회사가 모두 쉰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때문에 나는 2019년 1월 14일부터 일을 시작했다.

 

내가 일하던 사무실에서 본 바깥 풍경

 

이미 2018년 8월에 겪어봤지만 여전히 스웨덴 직장은 놀라운 점이 많았다. 우선 스웨덴 대외 협력처 사무실에는 지정석이 없었다. 스웨덴 대외 협력처 건물은 총 3층이었는데 카페테리아와 캐비닛, 각종 콘퍼런스룸이 있는 1층을 제외하고 2, 3층이 사무실이었다.

 

“일할 게 없으면 집에 가도 돼”

보통 아침에 먼저 온 사람이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서 일을 했는데 대부분 같은 팀 동료랑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해서 같은 구역에 앉는 것을 많이 봤다. 가장 신기했던 점은 지정석이 없는 점은 나 같은 인턴이나 대외 협력처 대표나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가끔 늦게 오거나 다른 팀원이랑 일하기 위해서 자리를 찾다 보면 Talent Attraction 부장님이나 대부서인 국제관계부 서장님 옆에 앉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한국식으로 생각을 안 하고 싶은데 자꾸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부장님이군, 혹은 이사님이군’ 이런 생각이 들면서 긴장을 바짝 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내가 인턴십을 하면서 극복을 하기 위해 가장 많이 노력했던 부분이었다.

내가 이 점을 점차 극복해나가며 부장님인 M과의 스몰 톡에 익숙해질 때쯤 다시 한번 문화 충격을 받았는데, 바로 내 직속 상사이자 차장님쯤 되는 위치인 D와의 대화에서였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스웨덴에서의 인턴은 처음에는 일을 거의 시키지 않았다.

 

사무실에 지정된 자리가 없다. 회의 시간 (출처 : 스웨덴 대외협력처)

 

그나마 나의 경우 예전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스웨덴 대외 협력처의 업무를 파악하고 있어서 첫날부터 일을 했는데 어느 날은 업무를 다 끝내고 나니 겨우 오후 2시 반이었다. 스웨덴 대외 협력처 직원들의 공식적인 업무 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인데 말이다. 처음엔 동료들한테 도울 것이 없냐고 물어봤는데 다들 지금은 할 것이 없고, 내 직속 상사인 D에게 가보라고 말을 했다.

D가 1층 캐비닛 근처에 있다길래 내려가서 D를 찾았는데 D가 나를 보자마자 ”오, 퇴근하는 거야? 잘 가”라고 말했다. 처음엔 반어법인가 싶어서 엄청 혼란스러웠다. 아니 업무 시간이 남았는데 퇴근한다고? 내가 뭘 잘못했나?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업무가 없어서 혹시 도울 것 없냐고 물어보려고 왔다고 답을 했다.

D는 지금은 괜찮으니 퇴근하라고 했다. 내가 조심스럽게 ”근데 지금 업무시간이지 않아?”라고 하자 ”아, 내가 말을 안 했나 보다. 스웨덴 직장에선 보통 탄력 근무제를 시행해. 9시에서 15시까지는 급한 일이 있거나 아프지 않은 이상 사무실에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 외에는 자율이야. 지금은 할 게 없으니까 집에 가도 돼.”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러한 탄력 근무제는 스웨덴 내에 있는 기업, 한국에 있는 스웨덴 기업에도 존재했다. 거기에다 나 같은 무급 인턴은 사실 돈을 받는 것이 아니므로 일이 없으면 내가 뭘 하던 자유였다. 이때부턴 정말 할 일이 없는 경우엔 일찍 집에 가긴 했는데, 신기하게 이 사건 이후로(부장님인 M 및 동료들에게 일을 많이 하게 해달라고 어필했다. M이 부서 전체 메일로 내가 일거리를 찾는다고 보내주심) 일이 많이 생겨서 일찍 집에 갈 필요는 거의 없었다.

 

육아휴직이 480일이나 되는 나라 

모든 나라가 다 똑같겠지만 인턴은 인턴을 하는 회사가 정말 인력이 부족하지 않은 이상 본인이 일거리를 얻고, 찾아내야 하는 것 같다. 탄력 근무제 외 근무 형태에 관한 특이점을 이야기하자면, 재택근무가 자유롭다는 점이다. 물론, 일주일 내내 재택근무를 하는 건 곤란하겠지만 스웨덴 대외 협력처의 경우 금요일에는 사무실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 이었다.

이런 자율성은 스톡홀름 외 타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더 부여된다. 웁살라에 사는 나는 매일 스톡홀름으로 통근을 했는데, 스웨덴 기차들은 특히 겨울철이 되면 잔고장이 잦아 출퇴근이 정말 많이 늦어질 때가 많다. 스웨덴 대외 협력처의 경우 보통 한 시간 이상 늦을 것 같으면 그냥 집에 가서 일을 하라고 권장했다.

이걸 몰랐을 때 기차가 고장이 나서 2시간 늦게 사무실에 도착하고, M에게 달려가서 늦어서 미안하다고 한 적이 있다. M은 아니라며, 앞으론 날씨 때문에 교통이 불편할 것 같으면 그냥 집에서 일하는 게 나을 거라고 말해줬다. 아직까지는 제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사무실 내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에서 온 나는 이런 문화가 신기하기도 했고, 편하기도 했다.

8월에 인턴을 할 때와 지금 인턴 할 때를 비교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팀 구성이었다. Talent Attraction에는 스웨덴 학교 졸업생들을 관리하는 Alumni Team과 스웨덴 유학을 홍보하는 Study in Sweden 외 2-3 Team 정도가 있었는데 나는 공식적으로는 Study in Sweden Team에 속했고, 이 팀의 일을 가장 많이 도왔다.

그래서 이 팀 구성원의 변화를 잘 볼 수 있었다. 우선, 2018년 8월에는 4명의 정직원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1년간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 휴직계를 낼 예정이었다. 거기에다가 1명의 직원은 계약직으로, 출산 휴가를 간 남직원을 대신해 3개월 정도만 일할 예정이었다.

처음 회사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출산 휴가를 간 여직원, 남직원에 대한 소개를 듣긴 했는데 그걸 실제로 보니 신기하긴 했다. 출산 휴가를 간 남직원은 내가 스웨덴에 다시 와서 인턴을 할 때는 다시 복직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를 돌보기 위해 Full-Time 근무 시간인 주 40시간이 아닌 주 32시간만 일을 했고, 역시 9시에서 3시 사이 시간은 지키면서 탄력적으로 근무했다.

스웨덴 법에 의하면, 스웨덴 내 회사에 다니는 정직원일 경우 (Permanently hired) 부부가 스웨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 한해 최대 480일의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데 남녀 모두 최소 90일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육아 휴직을 쓴 남자 직원분도 딱 90일을 쓰고 복귀했다.

 

육아휴직 중인 스웨덴 아빠들. 적어도 90일은 무조건 쉰다. (출처 : 대외협력처)

 

이렇게 출산 휴가를 가거나, 복귀한 후에도 육아를 위해 풀타임 근무를 하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서 임시직원, 스웨덴어로는 비카리앗 (Vikariat) 이 고용된다. 비카리앗은 말 그대로 임시직이다. 2개월이 될 수도 있고 1년이 될 수도 있으며, Full-Time이 될 수도 있고 Part-Time이 될 수도 있다.

불안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Vikariat 자리에 지원한다. 경력이 적은 주니어들이나 커리어를 더 쌓기 위해 좋은 회사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카리앗은 좋은 기회이다. 그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또 운이 좋으면 정직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의 입장에선 노동력의 공백을 채우고, 또한 한 번 채용하면 자르기 힘든 정직원을 뽑는 부담 대신 일정 기간 해당 임시 직원을 지켜보며 이 사람이 회사와 맞는 사람인지 지켜볼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모두에게 윈윈인 좋은 기회이지만 보통 비자가 없는 non-EU 사람들을 비카리앗으로 뽑지는 않아서 나에게 해당은 안 된다(이론상으론 가능하다).

 

나는 스웨덴을 포기할 수 없다 

내가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Study in Sweden에서 일한 Vikariat은 총 3명이었는데 한 명은 유럽 사람, 한 명은 스웨덴 시민권자이자 대외 협력처에서 나처럼 Digital Ambassador로 일한 사람, 나머지 한 명은 스웨덴에 오래 살아서 영주권이 있고 오랫동안 대외 협력처에서 파견 직원 형태로 일한 중국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공기업이다 보니 다른 기업보다 더 보수적인 면은 있겠지만, 이런 면을 보면서 스웨덴 기업은 정말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직원들의 국적 비율을 보면 그런 면을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나 포함 2명을 빼고 대외협력처에서 일하는 아시아인은 한 명도 없고, 절대다수는 스웨덴 사람, 그다음은 유럽 사람, 비유럽인이고 아시아인은 정말 극소수다. 국적 비율이 이렇다 보니 스웨덴 사람들의 문화, 성향을 한 번에 볼 수 있었다.

우선 직원들끼리는 계급이 없다. 물론, 직급이 높은 사람은 존중해주지만 직급이 높아서 존중해준다기보다는 직급에 맞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존중해주는 것에 더 가깝다. 그래서 직급이 높은 상사라도 윗사람으로 대하기보단 능력 있는 동료로 대하는 것 같았다.

스웨덴 대외 협력처는 각 소부서 (예를 들면 Talent Attraction Unit) 별로 매주 스웨덴의 다과 타임인 FIKA 타임을 해서 친목을 도모하고 하루에 2번, 각 15분씩 FIKA 시간을 정해서 직원들과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이때 직원들은 당연히 스웨덴어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당시 스웨덴어 실력이 지금보다도 더 모자랐던 나는 셀프로 스웨덴어 회화 듣기 시간을 즐기거나 리액션을 담당하곤 했다.

 

스웨덴의 다과 타임 FIKA. 음식을 먹으며 친목을 도모한다 (출처 : 대외협력처)

 

그러다 보니 직원들이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하는지 지켜볼 수 있었는데, 신기한 건 우선 상사 우대의 개념이 없어서 상사의 말을 엑스트라로 귀담아듣는 사람이 없고, 상사도 그런 걸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평사원들 대화에 끼기 위해 조용히 있다가 말을 던지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점들이 스웨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등의 가치 실현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까마득한 임원급 직원들이 나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기도 했는데, 그땐 상사에게 쫄았고 불편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들에게도 고맙다.

사실 내가 스웨덴에 오기 전에 가장 기대했던 것은 성 평등을 포함한 평등이었고, 스웨덴에서 3년 산 지금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가장 실망한 이유도 구직 시장에서의 인종차별을 포함한 평등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웨덴 취업의 문을 계속 두드리는 이유는 스웨덴 대외 협력처에서 경험한, 내가 스웨덴에서 일을 하게 될 경우 누릴 수 있는 평등의 가치가 좋아서이다.

우선, (인턴으로 들어왔지만) 직원들에게 성별과 인종을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을 해주는 느낌이 정말 좋았고, 수평적인 문화라 다른 직원을 봤을 때 계급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 자체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윗글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성 평등 국가답게 임원급 자리에 절반이 넘는 인원이 여자였고, 많은 중간 관리직 직원들이 여자였다. 인턴십을 할 당시 그들을 보며 내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심었다. 그래서 나는 스웨덴을 포기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