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취업, 하지만 난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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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만 하면 천국인데…

평등국가, 복지국가. 스웨덴 하면 가장 떠올리는 수식어들이다. 실제로 높은 수준의 복지 제도와 세계 최고 수준의 성 평등, 일상생활에서 느끼기 어려운 인종차별은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가진 확실한 매력이다. 스웨덴에 온 많은 친구들이 스웨덴에서의 평등, 여유를 경험하고,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호감을 느낀다. 나 역시 스웨덴에 오고 나서 바로 스웨덴과 사랑에 빠졌었다.

평생 무료에 가까운 의료비** 와 아름다운 자연(그리고 깨끗한 공기!), 한적하면서 있을 것은 다 있는 이 나라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 스웨덴은 국공립 기관에서 의료시설을 관리한다(일부 개인 병원 있음). 한번 병원을 방문할 때(의사 방문) 300크로네 이상 내지 않으며(국공립/개인 병원 모두), 약 처방은 1년에 2,200크로네 어치 이상 처방받으면 그 이후부터는 무료로 처방받는다. 환자가 1년 동안 내는 의료비는 최대 1100크로나로, 이 이상은 낼 필요가 없다.

 

스웨덴 동쪽 발트해에 있는 조그마한 섬 고틀란드

 

직장을 가지게 된다면 스웨덴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훨씬 많아진다. 우선 법적으로 보장이 되어있는 25일의 유급 휴가 (공기업 등 일부 기업은 30일의 유급휴가를 주기도 한다. 주말 및 공휴일 등 휴일은 일수로 계산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보장된 유급휴가 일 수는 늘어난다), 즉 5주의 유급 휴가는 정말 매력적이다.

거기에다 ‘들어가기는 매우 어렵지만 그 후로는 천국인’ 스웨덴 회사의 시스템상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어려워 정년퇴직은 한번 고용이 된 이상 보장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도 직원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직원이 자기 발전을 위해 학업을 계속하고자 희망하는 경우에도 직위가 보장된 상태에서 휴가를 내고 교육을 받을 수 있다(Lag (1974:981) om arbetstagares rätt till ledighet för utbildning, Sveriges Riksdag 2019).

 

웁살라 대학이 있는 웁살라 시

 

심지어 다른 직장에서의 일을 경험해보고자 하면 역시 휴가를 내고 일을 할 수 있다(Lag (2008:565) om rätt till ledighet för att på grund av sjukdom prova annat arbete, Sveriges Riksdag 2019). 실제로 내가 스웨덴 대외 협력처에서 인턴을 했을 때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2명의 직원이 1년간 휴직계를 내고 다른 직장에서 일했다. 직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평등함에 대해서는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었다. 정말 좋다.

근데 이런 혜택은 다 취업 전선을 뚫었을 때 받을 수 있는 것들이고, 스웨덴 취업 전선은 영주권이나 삼보 비자가 없는 비유럽인이 뚫기엔 너무 어렵다. 

 

‘문송합니다’는 마찬가지다  

나는 스웨덴 대외 협력처에서의 인턴십이 끝난 3월 중순부터 약 7개월 동안 대략 200개의 원서를 냈다. 결과는 좋지 않다. 내가 인터뷰를 본 곳은 현재 진행 중인 곳을 포함해서 대략 8개 정도이다. 반은 다국적 대기업이고 한 개는 스타트업, 세 개는 스웨덴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는, 말 그대로 스웨덴인만 가득한 회사에서의 포지션이었다.

 

취업에 도전했다가 수없이 받은 리젝트 메일. 난 200군데 넘게 응시했다

 

지금 진행 중인 곳인 한 곳과 회사 내부 사정으로 채용 프로세스가 중단된 곳을 제외하면 모두 비자 문제로 떨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앞에 언급한 두 곳은 모두 대기업이다. 그나마 대기업이 다양성을 중요시하고 재정도 빵빵해서 비자를 줄 확률이 높다. 그만큼 스웨덴이 외국인에게 주는 비자에 박하다는 뜻이다. 주변 경우를 봐도 마찬가지다.

비자 주는 것에 박하고 낯선 외국인에게 보수적인 스웨덴 고용 시장이기에 보통 인턴십을 통해서 직장 동료들의 신임을 얻고, 그 후에 직장 및 비자를 얻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것도 역시 운이라는 것이다. 인턴십을 잘했더라도 회사에서 인력을 고용할 상황이 안된다면 나처럼 인턴은 경험으로만 남을 뿐이다.

물론 나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취업하거나 학교를 졸업하고 6개월 안에 무사히 취업하고 비자를 얻은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과 나의 가장 큰 차이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전공이라고 말하겠다.

 

힘든 시절 위로를 준 나의 반려 고양이 부디스

 

웁살라 대학교 졸업생 중 내가 아는 5명의 졸업생이 졸업 전후로 취업을 해서 비자를 얻었다. 이 다섯 명의 전공은 의학 관련 (그래서 카롤린스카 연구소에 취업), 통계 (재무 담당으로 취업), 경제 (Analyst) 그리고 UX Designer (IT 기반 전공)이다.

이 다섯 개 직업의 공통점은 모두 스웨덴 내 부족 직업군이라는 것이다. 스웨덴 내 부족 직업군은 광범위하지만 대부분 이과 계열인 의학 (치과 등), 공학 (전기공학, 화학공학 등), IT 계열 (프로그래머, UX Designer 등) 직업군들과 재무(경제, 통계 등) 등이 있다. 물류 계열 직군 (Logistics)도 부족 직군이긴 한데 내 주변에는 없다.

이 친구들도 취업에 성공해서 비자를 얻었지만, 이들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절대로 쉽게 취업을 하고 비자를 얻었다고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은 인턴(한 개에서 여러 개)을 거쳐서 취업을 했다. 의학 계열을 공부한 친구를 제외하면 스웨덴어 수준은 초∙중급 수준이고 모두 영어를 주 언어로 하는 곳에 취업했다(의학 쪽은 영어로 공부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스웨덴어로 수업하는 프로그램만 운영한다).

기한 내에 취업에 성공한 이런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역시 문송합니다는 스웨덴도 마찬가지군”이었다. 

 

한국인의 강인함과 성실성으로… 

나랑 비슷한 전공을 한 친구들은 대부분 비자 때문에 취업난을 겪고,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파트너 비자를 얻어서 취업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나랑 같은 전공, 비슷한 분야로 취업한 친구 중에 비자를 지원받은 친구는 한 명 정도고 그 외에는 거의 전멸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전공을 잘못 선택한 내 잘못이 된다. 스웨덴 내 미디어 관련 전공은 수요가 많은 편이지만 그와 동시에 공급도 엄청 많다. 거기에 3편에서 언급한 전공 특성상 외국인이라는 점이 타격이 큰 직군이라 정말, 취업 시장에 들어서면, 특히 초기에는 스웨덴 사람 뒤에 많이 밀린다.

외국인 패치로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내가 스웨덴 회사에 가장 많이 어필하는 것은(비유럽 유학생이 폐쇄적인 스칸디나비아로 와서 살면서 만들어진) 독립성, (다사다난한 사건으로 단련된) 강인함과 적응력 그리고 (아시아인, 특히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이다. 스웨덴 대외 협력처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칭찬도 빨리 배우고, 또 의욕이 넘치면서 일 처리가 빠르다는 점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물론 다른 한국인 분들도 외국에 나가면 나랑 비슷한 칭찬을 들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이런 장점은 일할 기회를 얻어야만 증명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한 번 괜찮게 일을 하고 나면 스웨덴 회사에서는 스웨덴에서 정말 중요시하는 레퍼런스를 써주기 때문에 나중에 취업에 도움이 된다. 

이 사람이 이곳에서 얼마간 일을 했고, 얼마나 잘했는지 등의 내용이 포함된 일종의 추천서인데,  스웨덴 회사는 취업할 때 레퍼런스를 요구하기 때문에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인턴이나 단기직을 얻었다면 열심히 해서 레퍼런스는 꼭 얻는 것이 좋다(스웨덴어로는 보통 Intyg라고 한다).

스웨덴 유학, 혹은 스웨덴 이민을 희망하시는 분들이 스웨덴 유학, 이민 그리고 취업에 관해 조언을 구한다면 우선 내가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스웨덴은 이민자에게 매우 폐쇄적인 국가라는 것이다. OECD에 따르면 (Swedish Policy Brief, 2015) 스웨덴은 OECD 국가 중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민자 등)이 인구 비율 가장 많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정도에 상관없이 이민자와 네이티브와의 취업률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나라이다.  이민자가 사회에 통합되기도 가장 어려운 나라라고 한다.

 

부족 직군을 미리 파악하고 공략하라 

한마디로 스웨덴은 외국인의 이민 및 취업이 매우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이점을 감안하고 이민에 유리한 조건을 알아보자면, 이민자 중 고학력 이민자는 다른 이민자들보다 취업률이 높은 편이다. 또한 3편에서 언급했다시피 스웨덴은 포지션에 맞는 직업과 관련 있는 학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을 선호한다.

 

그래서 내가 추천하는 첫 번째 방법은 다른 유럽 국가에서 (유학 후) 취업을 하거나, 혹은 취업만 해서 3년에서 5년 정도 경력을 쌓은 후 스웨덴으로 경력직으로 오는 것이다.

이 방법 역시 쉬운 길은 아니고, 스웨덴을 목표 삼아 다른 국가를 통해서 오는 방법이니 많이 끌리진 않을 테지만 다른 유럽 국가, 예를 들어 독일 같은 경우는 한국인 취업자들도 많고 (주변에 가서 일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자 종류도 많고 체류 기간도 길어서 비자 문제도 좀 더 수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스웨덴보다 취업이 좀 더 수월한 유럽 국가에서 경력을 쌓고 스웨덴으로 오는 것도 나쁘진 않다. 만약 해당 유럽 국가에서 영주권을 얻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두 번째는 나처럼 스웨덴 내에 있는 대학원을 진학, 취업하는 방법인데, 이 방법의 장점은 2년 동안 스웨덴을 살피고 네트워킹을 할 시간과 스웨덴어를 배울 시간이 생긴다는 점이다. 단점은 스웨덴에서 비 스웨덴인이 스웨덴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기는 힘들다는 점이고 (취업 박람회 등 네트워크 행사들이 스웨덴어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스웨덴 대학교가 취업을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에 (특히 문과는 더욱 어렵기 때문에) 실패로 끝날 확률도 있다.

마지막은 한국에서 경력을 쌓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와서 취업하거나 한국에서 경력을 쌓고 한국에서 지원을 해서 스웨덴으로 넘어오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나처럼 막무가내로 오는 것보단 스웨덴 내 부족 직군을 참고해서 관련된 경력을 쌓고 오는 게 좋다.

 

누가 스웨덴 유학, 취업을 포함한 이민을 추천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어렵다. 청소년 시절부터 유럽 국가로 이민을 오고 싶었고, 이왕 하는 거 한번 Challenging 한 도전을 해보자! 스웨덴 좋다잖아! 라는 생각으로 온 나도 스웨덴에서 힘을 내는 것이 정말 힘든데 다른 사람에게 스웨덴을 추천할 수 있을까 싶다.

근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어차피 한국에서의 경력이 거의 전무한 예술가 지망생이었던 지라 한국이나 스웨덴이나 취업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점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스웨덴에서 비자 문제로, 구직 문제로 많이 치어서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서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요즘에는 한국의 취업난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각종 부조리 등을 생각하며 차라리 스웨덴이 낫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스웨덴은 적어도 취업 관문을 뚫고 나면 이민자라도 삶의 질은 보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성별, 학력, 경력, 직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겪는 차별/어려움과 스웨덴에서 겪는 차별/어려움은 다르지만 비슷한 정도라고 생각이 되고, 본인이 어떤 걸 더 잘 견딜 수 있는지(한국에서의 어려움 vs 스웨덴에서의 어려움) 잘 생각해보고 판단을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스웨덴에 오고 싶거나 이미 와서 취업전선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나의 소소한 글이 도움이 되길 바라고 또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끝날 과정이니 적어도 최선을 다해서 후회가 남지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