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가 나를 위로했다 “That’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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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우연한 곳에서 찾아온다 1 

샌프란시스코 및 버클리 주변에는 노숙자가 많다. 그들은 보통 회갈색의 옷(반지의 제왕 ‘회색의 간달프’의 너덜너덜한 로브를 떠올리게 한다)을 여러 겹 걸치고 어슬렁거린다. 간혹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당연히 나도 그런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길거리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그저 어떤 패배 의식, 의지박약 또는 사회 부적응에 의해 그렇게 되어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마땅히 도와줘야 할 이유가 있지도 않거니와, 내가 도와줄수록 오히려 남에게 기생하는 삶에 머물러 지속적으로 정상 궤도에 오르려는 사회인에게 다시 피해를 줄 것이라 믿었다. 그분들은 정말로 지금 배고플까?  정말로 의지를 갖고 상황을 타개하고자 할까? 내가 건네는 빵 한 덩이가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는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입구 앞에서, 나와는 등굣길에 수십 번 마주치던 노인에게 빵을 건네는 여성을 보았다. 

 

그들의 의지가 어떻든, 삶에 대한 태도가 어떻든, 사회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주든, 그렇게 멀리 나가지도 않고 단순히 ‘그냥’ 도와주고자 하는 모습에서 오랜만에 인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라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살면서 근거를 따지도록 교육받는다. 왜 어떻게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평가하고, 앞으로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지 물 샐 틈 없는 논리로 나의 (혹은 사회의) 미래를 의심한다. 이런 생산적인 습관은 초등학교 1학년 즈음 지하철 입구 바닥에 앉아 대파를 파시던 할머니를 보고 “엄마, 저거 사줘야 돼”라며 근거 없이 조르던 나를 이렇게 현대화시켰다.

 

그날 이런 그녀의 행동을 보고 이제부터 한결같이 봉사하고 언제나 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저 홀로 공부하다가 스쳐 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내가 추구하던 것과는 다른 어떠한 가치가 존재하기도 하며 그 가치 또한 이 세상을 유지하는 것 중 하나라는 것을 배운다. 그렇게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다시금 질문을 던져 오래전 한국에서 잃어버렸던 내 본모습을 오히려 지구 반대편에서 되찾기도 하는 것이다.

위로는 우연한 곳에서 찾아온다 2 

어느 날은 최악이었다. 집에서는 개미가 들끓고 중간고사는 처참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행인과 부딪혀 횡단보도 끝 하수구의 네모난 뚜껑의 사각 패턴 속에 손에 들고 있던 아이폰을 빠뜨려서 잃어버렸다. 그날 당연히 내 표정은 그늘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냥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지나가던 덩치 큰 노숙자가(미국 래퍼 50센트를 연상케 하는 목소리였다)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What’s wrong? (문제 있어?)”

 

원래 같으면 대꾸도 하지 않고 무시했겠지만 뭐 더 나쁜 일이 있겠나 하고 그에게 말을 시작했다. 이래서 기분이 안 좋았는데 어떤 일이 겹쳤고, 왜 이렇게 연속으로 발생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가만히 듣다가 내 어깨를 두 번 치며 말했다. “That’s life. (사는 게 그렇지)” 

 

노숙자에게 위로를 받은 그 역사(?)의 거리, 버클리

 

그 순간의 감정은 참 미묘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고마운 일이지만, 어째서 하필 집도 직업도 가족도 없이 정처 없이 떠돌던 노숙자에게? 지금 내가 그렇게 밑바닥이었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에 내가 다시 일어설 힘을 준 사람은 언제나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주던 친구도, 나에게 큰 서포트가 되어주시던 연구실 교수님이나 박사님도 아닌 바로 그 노숙자였다. 어쩌면 누구보다 가장 고통스러운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각종 어려움에 갇혀 스스로의 인생을 비관할 사람에게 위로 한마디를 듣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했다. 

 

그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일련의 사건 사고들은 나의 인생을 비관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가장 기초적인 단 한 문장 “That’s life”는 조치훈 전 프로 바둑 기사의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라는 말과 유사하게 와닿았다. 그래봤자 그게 사는 거고 그래도 그게 나의 인생이니 다시 일어날 뿐이다. 

 

유학, 스스로의 편함에서 벗어난다는 건…

나에게 유학의 의미는 단순히 더 나은 성적표를 얻기 위해 남이 잘 때 공부하고 시험 당일 결과가 좋도록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것이 내 전부였던 과거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옳고 그름은 무엇인지, 나의 좋고 싫음은 무엇인지 다시 정립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서양인, 흑인, 아시아인 모두가 모여서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에서 범국가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속에서 개인을 다시 찾는다. 

 

그렇게 탐구해서 나는 내 자아실현에 한 번 더 다가갈 수 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나의 비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것인데, 이는 일정량의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국적과 문화를 불문하고 내가 시작하는 프리젠테이션에 끄덕일 수 있게 하는 영향력을 갖기 위해 나는 유학을 선택했고 그것은 아직까지도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만 만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일만 잘하지 않고 내게 무엇이 없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서 한 명이라도 더 내 주장에 귀 기울이게 만들고 싶다. 

 

유학을 한다는 것은 고생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유배가 아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나에 대한 칭찬 한마디는 “What sets Chester apart is that he constantly steps out of his comfort zone to learn new skills. (체스터가 특별한 이유는 그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 위해 스스로의 편함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점이다)” 였다. 나의 안전 구역이 어딘지를 파악하고 그곳에서 한 발씩 나와보는 연습을 하다 보니 나는 내 인생을 점점 긍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