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벤츠 “이런 게 스타트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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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없어도 괜찮아…”

나의 미국 직장생활은 2015년 여름 메르세데스 벤츠 R&D(연구・개발팀) 미국지사에서 시작했다. 인턴으로 입사해서 벤츠 미래 차 연구팀 (Future Transportation North America 줄여서 FTNA라 불렀다)에서 일했는데, 이 팀은 당시 밴 차량을 이용한 물건 배달 플랫폼을 개발 중이었다. 즉, 새로운 차량을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팀이 아닌 차량을 가지고 부가적인 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 치중했다. 그래서 페덱스, UPS, 아마존, 구글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배달 기사와 매니저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좀 더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재밌는 점은 우리가 밴 차량의 생산자인 만큼 차량을 직접 개조해서 서비스와 결부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물칸 안에 인공지능 학습(딥러닝)을 통한 영상 처리가 가능한 카메라와 컴퓨터를 심어서 배송 물품을 화물칸 내 어느 위치에 승하차시켜야 하는지 알려준다든지, 실시간으로 기사가 배달을 완료하는 시점을 기록한다든지 등의 연구를 진행했다. 

독일 회사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에 일종의 스타트업 연구소를 마련한 것이다. 무엇이든 먼저 만들어 보고 도전하는 점을 가장 강조했다. 또한 신생팀이라서 모두 열의를 갖고 일했고 매니저들 또한 재밌게 일하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힘썼다.

 

팀에 참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사진. 지금은 50명 가까이 되는 큰 팀이 되었다.

 

매니저와 1대1 면담을 격주로 할 때마다 나에게 항상 먼저 묻는 말이 있었다. “하는 일은 재미있어?” 그녀는 직원들이 재밌게 일하는지 여부가 다른 회사로 인재를 뺏기지 않는 길이라고 믿었다.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피드백을 주면, 매니저는 최대한 함께 고민했다. 만약 그게 커리어를 전환해야 하는 수준이면 해당 교육이나 대학원을 알아봐 주었고, 그렇지 않으면 인사팀에 이야기해서 방향을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봐 주었다. 

또 진로는 그대로라도, 만약 이런 디자인은 재밌었는데 새로운 프로젝트의 디자인은 지루하다고 이야기하면 그 일을 잠시 맡아줄 디자인 인턴을 알아봐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했다. 또한 근무 시간에도 적당히 농담하고, 넉넉히 장난치고, 서로의 뒤통수에 공을 던져 맞추며 일했고, 누군가 웃지 않는 날에는 다른 직원이 반드시 다가와서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또한 서로 간 피드백은 상당히 직접적이고 솔직했다. 이러한 문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모두가 서로의 능력에 의심이 없을 만큼 뛰어났던 데다 사람 대 사람으로 친밀했기 때문이다. 강한 피드백이 날아오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능력에 대한 공격이 아닌 “너의 능력이면 원래 더 나은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라는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서로서로 위하고 있음을 잘 알기에, “너는 이렇게 말했는데 그건 바보 같은 아이디어처럼 들려.”라고 말해도 “네가 바보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너 생각과 내 생각은 일치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가졌다. 우리는 그렇게 최대한 그 사람의 능력과 아웃풋을 동일시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 매니저는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줬다. “네가 비록 컨디션이 안 좋거나 성과가 안 나오는 날이 있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그것 또한 고려해서 셀러리는 책정된 것이다. 우리는 너의 능력을 결코 잘못 판단하지 않는다.”

 

뺀질이 크리스가 날리는 ‘빅엿’

우리 팀은 직원과 매니저의 관계가 독특할 정도로 친했다. 가끔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의견에 솔직하며 거침없이 대들고 농담은 시원시원했다. 하루는 팀원들이 미팅에 자주 늦자 팀 헤드가 ‘시간약속을 잘 지키자’라는 이야기를 모든 직원 앞에서 했다. 그다음 날 아침 공교롭게도 팀 헤드가 독일에 있는 임원에게 걸려온 전화 때문에 살짝 늦게 미팅에 들어왔다. 그러자 바로 한 직원은 미팅에 참여한 모두에게 연설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시간 낭비는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 늦는 사람은 바보 천지다!’

이 문제아 같은 직원 크리스는 굉장한 뺀질이였으나, 잘리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기계 엔지니어로서 프로토타입 제작의 천재였고 사회성은 만렙인, 그야말로 ‘인싸’였다. 크리스와 관련된 재밌는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한번은 차고에 쥐가 나오자 네일건을 여기저기 쏘아 주변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매니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을 할 때면 그날 저녁에 피카츄가 빅엿 날리고 있는 자세를 모델링한 뒤 3D 프린팅해서 책상에 올려놓기도 했다. 언젠가는 매니저가 ‘너 작업대 좀 정리하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우리 팀은 스타트업 느낌을 원한다고 했죠? 이게 스타트업이에요” 다른 직원이 사무실에 자주 데리고 오는 강아지에게 크리스는 항상 매니저를 가리키며 외쳤다. “Get him! 저 사람이야, 잡아!” 

크리스뿐 아니라 대부분의 직원이 이렇게 발랄한 반항심을 갖고 일했다. 

 

크리스의 작업 속도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의 하와이안 셔츠를 향한 열정만큼.

 

경쟁사에서 날아온 수상한 소포 

당연히도 회사가 메르세데스 벤츠인지라, 모든 직원은 회사에서 40% 할인받는 리스로 벤츠를 타고 다녔다. 팀 헤드 니콜라스는 굉장한 벤츠 팬이었는데, 아우디, BMW 등 경쟁사를 혐오했다. 그는 아우디가 신차를 발표하면 콧방귀를 뀌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우리 사무실에 한 의문의 소포가 배달된다. 

 

‘그 그룹’으로부터 도착한 소포

 

그것은 바로 BMW 그룹이 보낸 3시리즈의 테일 라이트가 아닌가. 이것을 놓고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이건 선전포고다, 폭탄이 들었다, 화학무기가 들었다 등의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한 직원 긱스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거 제 거예요…”

긱스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는데, 그는 어렸을 때부터 BMW 열성 팬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파격적인 리스 할인을 굳게 거절하고 매일 손으로 닦아서 애지중지 키우는 BMW를 타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테일 라이트를 새로 갈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소포를 보낸 것이다. (근데 굳이 사무실로?) 그는 퇴사하는 날까지 그 차를 고수했다. 여담이지만 그는 나중에 포르쉐로 직장을 옮겼다.

그 뒤로 니콜라스는 언제나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사무실 주차장에 들어오며 외쳤다. “또 누가 BMW 타고 왔어?! 죽을래?” 

 

“삶을 즐기러 사라집니다”

독일에서 매년 열리는 가장 큰 자동차 콘퍼런스, IAA (International Motor Show Germany) 준비로 우리는 3달을 빠듯하게 일했고,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행사 준비가 너무 빡셌기에 모든 직원의 체력은 너덜너덜한 상태였고 끝날 즈음에는 반 좀비가 되어있었다. 보통 행사가 있고 난 뒤에 한 달가량은 비교적 여유로워지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일한 보상 휴가를 바라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출근 시간, 물론 크리스가 먼저 직원 톡방에 말문을 열었다. “영화 같은 거 보면 주인공은 항상 어디로 홀연히 사라지던데?”

눈치와 계산이 빠른 전자 엔지니어 아밋은 옆에서 거들었다. “우리도 그냥 튈까? 어차피 오늘 미팅 없잖아. 그리고 어젯밤에 니콜라스 기분 좋아 보였음” 

행동이 빠른 기계 엔지니어 닐은 이미 주차장을 정찰하고 왔다. “아직 매니저들은 아무도 출근 안 했음. 카피.”

똘똘 뭉쳐 공모한 결과, 작은 파업(?)을 하기로 했는데, 출근은 했으나 찾기 어렵게 숨어 있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회사 프로토타입용 밴을 타고 마트에서 맥주를 산 다음, 주변 공원에서 주차하고 반나절을 ‘칠링’하기로 했다. 때는 10월, 캘리포니아 날씨는 해가 쨍쨍하고 바람은 선선해 피크닉 하기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물론 매니저가 걱정할 수 있기에 작은 메모도 함께 남겼다. “우리를 찾지 마시오. 우리는 삶을 즐기러 갑니다.”

 

피 튀기는(?)  벤츠 노조 파업 현장

 

우리는 성공을 자축하며 맥주를 따고 있었는데, 한 매니저가 1시간이 안 되어 찾아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차 속에 심어놓은 연구용 GPS가 켜져 있음을 깜빡한 채로 신나게 운전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추적해 곧장 달려온 것이다. 매니저는 웃으며 우리의 파업 현장 사진을 찍어줬고 그렇게 치열했던 반나절 간의 노사 줄다리기는 일주일간 자택 근무로 합의되었다. 물론 다 함께 사놓은 맥주를 비우기 위해 그날 저녁은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