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봐 일단… 바뀔 거야 뭐든

318

스타트라인에 선 그 순간은 언제나 설렌다

2년 전, 생판 낯선 포항에서 처음 정기런을 나갔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검색을 통해 ‘포항 러닝 크루’를 처음 알게 됐다. 가입을 신청한 뒤에도 하루를 일 년같이 승인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학창 시절, 대회 시즌만 되면 각 반에서 한두 명씩 차출하는 육상부에서 언제나 중장거리 대표로 뽑힌 경력이 있다. 웬만한 사람들보다 잘 뛸 자신이 있었다.

큰 목소리로 구령을 넣으면서 준비운동을 따라 했다. 포항에서의 첫 뜀박질이 시작됐다. 대회도 아니면서 뭐가 그렇게 긴장됐을까. ‘벅차오른다’리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은 그 묘한 긴장감, 가빠 오는 호흡과 바람을 마주하는 그 느낌! 알 수 없는 새로운 기운이 나를 감싸는 순간이었다.

처음 참석한 모임에서 나의 페이스는 ‘530’(1km당 걸리는 시간 평균 5분 30초). 달리면서 시간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페이스별 인원 구성을 보니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 선택한 속도였다. 하지만 자유를 만끽하던 기분도 잠시, 상쾌함을 선사하던 바람이 어느 순간부터 내 목을 날카롭게 할퀴고 있었다. 가슴을 쥐어짜는 거친 호흡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다른 길을 달리기라도 하는 걸까. 직선주로를 평화롭게 활주하는 기존 회원들과 달리, 내가 달리는 길은 디스코 팡팡 마냥 울렁거리는 듯 했다. 그저 낙오 당하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3.5km를 왕복하는 총 7km 코스. 포항을 좌우로 가로지르는 형산강변. 건너편 포스코 공장단지에서 화려한 불빛들이 아름다움을 뽐낸다. 하지만 제 몸 하나 감당하기 힘들었던 나는 그저 좀비처럼 앞만 달릴 뿐이었다. 그저 이 달리기가 마무리되기만을 바라며 정신없이 달렸던 게 바로 2년 전 나의 첫 러닝의 기억이다.

 

아름다운 포스코 단지의 야경

 

달리는데 이유가 필요해?

사람들이 러닝 문화에 빠져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나의 경우, 학창시절  육상부 경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낯선 지역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더욱 앞섰다. 영화, 와인, 독서 동호회 등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했지만, 왠지 러닝크루에서는 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평소 러닝을 즐긴다든가, 버킷리스트에 마라톤 완주가 있다든가, 불어난 20kg의 몸무게를 빼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다. 퇴근 후나 주말에 편하게 만나 맥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를 찾고 싶었다.

시간이 1년 쯤 흘렀을까. 크루 멤버들과 어울리고 가끔 10km 대회에 나가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던 그 때, 크루 형의 달콤한 유혹이 예고도 없이 훅 들어왔다.

“풀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3월에 나가보자”

그 말을 듣고 집에 오자마자 ‘서울 동아 마라톤’ 풀코스를 접수했다. 무모한 선택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달리고, 대회는 10km 코스 세 번이 전부. 심지어 하프 코스도 경험해보지 못한 내가 대뜸 풀코스를 도전하다니… 

풀코스를 도전하는데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니다. 누구든 열정과 끈기만 있다면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긴 거리를 뛰다 보면 ‘준비도 없이 쉽게  달릴 수 있는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여차저차 벼락치기 훈련을 통해 눈물을 머금고 풀코스를 완주해보니 러닝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좋아했던 달리기에서 달리기 자체를 사랑하게 됐다. ‘목적을 위한 사랑’이 ‘사랑 자체를 위한 사랑’으로 바뀐 느낌이랄까…?

 

뛰어봐 일단… 바뀔 거야 뭐든

내 러닝은 끊임없이 변했다.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잘 달릴 수 있는지 궁금했다. 온종일 인터넷을 뒤지며 연구했다. 달리기하는 모든 사람과 가까워지고도 싶었다. 지금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덧 러닝 크루 매니저가 됐고, 3년 차 러너가 됐다.

일부 독자들은 ‘숨차고 힘들다면서 왜 그렇게 죽자고  뛸까?’라며 의아할 수도 있다. 혹은 ‘나는 달리기에 소질이 없고 애초에 잘 달릴 수 있는 체형이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러닝이란 친구는 우리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0.1t에 육박하던 나의 런린이(러닝+어린이) 시절도 이해해 준 마음 넓은 친구다. 러닝의 가장 큰 매력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간혹 다른 사람과 속도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다는 소식을 듣곤 한다. 그럴 필요 없다. FUN RUN을 추구하는 많은 러너의 목표는 어제의 나를 이기고 목표한 기록에 도달하는 것이지, 누구보다 빠르게 피니시라인을 통과하겠다는 욕심이 아니다.

좋아하는 길에서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호흡과 발을 맞추고 싶다면, 오늘 하루의 스트레스를 바람에 날려버리고 싶다면 지금 당장 편한 옷, 운동화 한 켤레만 걸치고 나와보는 건 어떨까. 그래도 아직 집 밖으로 나가 한 발 내딛기 망설여진다면, 거울을 바라보고 조정석처럼 섹시하게 한마디 던져보자.

“야 너두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