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다_가방 속에 책 한 권을 담는다면?

속절없이 봄이다  

코로나 사태로 학교와 학원이 잇따라 휴교, 휴원하며 학생들은 유례없는 긴 방학을 맞았다. 일부 직장인들의 근무는 재택근무로 전환되었고, 자영업자들의 휴업도 이어지고 있다. 봄꽃은 속절없이 피어나는데 봄맞이는커녕 가벼운 외출조차 불안하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으니 뜻밖의 부작용도 생겼다. ‘층간 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이후 층간 소음과 관련된 민원 분쟁이 77.3%가 증가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쓰며, 나는 또 한 번 소음과 진동을 견딘다. 77.3%나 증가했다는 층간 소음 민원 분쟁에 나 역시 한 발을 내디디고 있음을 실감한다. 밤낮없이 쿵쾅거리는 이웃집에 찾아가 으름장을 놓을까, ‘제발 좀 조용히 해달라’며 쪽지라도 붙여놓을까, ‘층간 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신고를 해야 하나… 계속되는 소음공해에 괜스레 인터넷 부동산을 전전하며 소리를 질러본다. 

“제발, 이 집구석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무심하고 시끄러운 이웃을 원망하며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속절없이, 봄이다. 여기저기서 꽃망울이 터지고, 아침저녁으로 다른 냄새, 다른 온도를 품은 바람이 분다. 이렇게 찬란한 날들이 계속되면, 지독한 집순이인 나조차 나가지 않고는 못 배긴다. 별다른 약속도 없이 거리를 배회하고, 볕 좋은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따뜻한 테라스에 앉아 낮 맥주를 즐기기도 하던 일상을 떠올리니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 

 

역병으로 봉인된 ‘한량 북튜버’

<인 마이 백>이라는 책이 있다. ‘평소 지니고 다니는 가방 속 물건들이 그가 누구인지 말해줄 것’이라는 명제 아래 148명의 가방 속을 들여다보는 독특한 책이다.  ‘오지랖 넓은 이 책의 편집자’, ‘사진집과 그릇을 좋아하는 회사원’, ‘나물 뜯기를 좋아하는 산 아저씨’ 등등. 148명의 가방 주인들에게 붙여진 이름은 재미나고 다양하다. <인 마이 백>을 보다 보면 으레 자신의 가방을 떠올리게 된다. 며칠째 미동도 없이 널브러져 있는 내 에코백을 바라본다. 

3년 전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박물관에서 구매한 이 가방에는 에곤 실레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만약 지금 봄나들이를 맘껏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가방에는 다음과 같은 물건들을 넣고 나갈 것이다. 카드지갑과 이어폰, 화장품 파우치, 그리고 심사숙고하여 고른 한 권의 책. <인 마이 백>의 목차처럼 이름 붙여보자면 ‘책을 좋아하는 한량 북튜버’라고 할 수 있겠다. (비록 지금은 역병으로 인해 특유의 ‘한량끼’가 봉인된 상태지만 말이다.)  

마음껏 외출할 수 없는 오늘, 빈 가방을 바라보며 ‘외출용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외출용 책’이란 뭘까? 말 그대로 ‘가지고 나가 읽기 좋은 책’이다. 뭐 그런 게 다 있나 싶겠지만, ‘외출용 책’을 고를 때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여러분의 가방엔 어떤 것들이 들어있나요?

 

일단 한번 가지고 나간 책은 바꿀 수 없으니,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책을 선정해야 한다. 만약 읽던 책을 가지고 나갈 경우, 읽지 않은 뒷부분이 얼마만큼 남았는지 꼭 체크해야 한다. 남은 분량이 얼마 없으면, 금세 다 읽어버린 책을 들고 황망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니까. 새 책을 가지고 나간다면 책 선정의 난이도는 더 높아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깥 풍경, 주변의 소란스러움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어야 하는데, 읽어보질 않았으니 파악하기도 어렵다. 운 나쁘게도 지루한 책, 어려운 책, 두꺼운 책을 들고 나갔다간 이내 독서를 포기한 채 공연히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기 십상이다.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가 그립다 

여러 선택지 중 ‘그냥 책을 안 들고 간다’는 가장 후회할만한 선택지다. 유난히 짐이 많은 날, 무거운 가방이 어깨를 짓누를 때면 나 역시 현관문 앞에 서서 망설이곤 한다. ‘오늘만 책을 두고 나갈까? 어차피 읽을 시간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긴 고민 끝에 책을 두고 나가는 날엔 어김없이 후회가 따라온다. 애매하게 비어버린 시간을 메울 길이 없어 방황하게 된다. (그리고 십중팔구는 여기저기를 배회하다가 엄한 충동구매를 하게 된다.)

‘외출용 책’의 중요성을 이다지도 힘주어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바깥에서 읽는 책은 편안하고 여유로운 휴식을 보장해 줌과 동시에, 세상과 더 깊게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책은 일종의 필터와 같다. 이 필터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더욱 다채롭게 바라보게 된다. 눈앞의 풍경, 사람들의 말소리, 사회의 이슈, 내면의 감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조금 더 입체적인 사람이 되고, 세상과 더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이 된다.

 문학 비평가 시릴 코널리의 말을 빌려보자.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가방 속에 담긴 한 권의 책을 통해 우리는 삶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  

 

 

이쯤에서 또 한 번,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쥔 채 소음이 가장 덜한 안방으로 도피한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이어폰을 꽂는다. 흙냄새 섞인 봄바람이 안방으로 불어온다. ‘소음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으로 들어가는 도피를 하고 싶다.’ 나는 거듭, 봄날의 독서를 갈망한다. 가방에 담긴 한 권의 책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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