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옮김을 생각하다_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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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men standing on the road the crossroad. Concept of important choices of a business. Decide direction. Human standing choice of ways. illustration cartoon vector

벤츠에 드리운 매너리즘의 그림자

2년 반 동안 몸담았던 메르세데스 벤츠 Future Transportation 팀에서도 침체기가 찾아왔다. 우리 팀이 밀던 아이디어들은 매우 높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지만, 다음과 같은 회사 내부적인 시스템의 문제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1. 독일에 있는 수많은 비슷한 팀들과 프로젝트가 겹침에 따른 경쟁 등 정치적 갈등

2. 미국 지사와 독일 본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대우하는 시선의 차이

3. 잦은 경영진 교체와 그 산하에 있는 팀들의 혼란 가중

4. 연구・개발 팀임에도 불구하고 초기부터 무리한 이익 산출 요구 (너무 이른 시점에서부터 최적화 강행)

5. 벤츠가 고급 자동차 브랜드로서 지켜온 이미지와 개발 중인 제품들이 가진 이미지 간의 괴리

6. 독일 본사에서 지령이 내려오는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

 

아마 대기업이라면 공통으로 가진 문제점이겠지만, 특히 벤츠의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자동차 회사로서의 자존심’이 디지털 소프트웨어 제품을 밀고 있던 우리 팀과 자주 마찰을 일으킨 것 같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오토 쇼에서 우리 팀은 야심작 몰리 (MOLEE : Mobile Locker Experience) 프로젝트를 화려하게 발표했다. 그러나 6달 뒤 프로젝트는 본사에 의해 중단됐다.

결국 팀내 핵심 엔지니어들은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며,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빈자리는 값싸고 비자가 필요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체했다. 어느덧 팀의 3분의 1 이상이 비 미국인, 미 경력자들로 채워졌다. 모두가 팀의 매니저들을 좋아하고 따르길 원했으나,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회사에는 남고 싶지 않았다.

오토 쇼, 유튜브, 마케팅에서는 우리 팀이 제출한 제품들로 화려하게 장식됐으나, 우리가 실질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시간보다 다음 달, 다음다음 달에 있을 데모를 더 잘 꾸미는 데 치중하도록 자주 지시받았다.

매너리즘을 부추기는 화살은 나라고 해서 피할 수 없었다. 내가 했던 대부분의 디자인은 대외 홍보를 위한 목업,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프로토타입 정도뿐, 내가 디자인 하고팠던 ‘소비자가 사용하는 디자인’을 만들 수 없었다. 이외에도 대기업의 특성상 한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와 빛을 보기까지 많은 결재와 승인 절차를 겪게 되는데, 이는 디자이너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질문 “이 디자인은 현재 어떻게 적용되었는가?”에 당당히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드는 무언가가 바로 현실에 적용이 될 수 있는 회사를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되도록 신제품 개발 사이클이 짧은 소프트웨어 회사여야 하며, 내 디자인 한장 한장이 큰 임팩트를 가질 수 있는 스타트업이어야 했다. 다만, 내가 비자 스폰서십을 반드시 받아야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이민 프로세스에 너그러운 대기업과도 콘택트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