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옮김을 생각하다_E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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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일, 밤에는 면접 준비

회사에 다니면서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것만큼 오묘한 일이 없다. 회사에선 여전히 일에 열중하며 마치 평생 다닐 것 같이 이야기하고 퇴근 후에는 이야기 중인 몇 군데 회사와 전화 통화를 하거나 면접 스케줄을 조정한다. 낮에는 일, 밤에는 포트폴리오 작업 및 면접 준비로 바쁘게 몇 달을 보냈다.

사실 그게 말이야 쉽지, 출근하고 나서 제대로 집중하기도 힘들다. 당장에 있을 두세 군데 회사와의 대화를 준비하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것만 해도 머리가 지끈한 데, 칼같이 돌아오는 회사 미팅에서는 쉴새 없이 의견을 쏟아내야 했다. 아마추어는 ‘잘하는 사람’이고 프로는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당시 나는 아직 프로페셔널함이 부족한지라, 내 매니저는 내가 회사 업무에 매너리즘이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어쨌든 구글, 아마존 등 대기업들과도 이야기해보고 당시에 잘 나가던 스타트업들 Atrium, Brex 등과도 인터뷰를 했다. 한 가지 깨달은 점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나에게서 바라는 점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인데, 가장 큰 차이는 포트폴리오에 대한 관점이었다.

구글 같은 대기업은 디자인 포트폴리오에서 디자인 UX 리서치와 프로세스를 상술해야 함을 강조했다. 조금이라도 구글 디자인 기준의 틀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이 탈락시킨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아마도 그들은 확고한 디자인 백그라운드와 잘 구성된 사용자 경험 연구 프레임이 있기 때문에 이를 효율적으로 따라올 수 있는 꼼꼼하면서 논리적인 디자이너를 원했을 것이다.

반대로 스타트업은 디자인의 장점만 부각할 수 있다면 독특한 포트폴리오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자유로움을 강조하는 스타트업 정신이 한몫했겠지만, 아마 그들이 대기업처럼 일일이 따지고 분석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속도와 즉각적인 피드백을 반영하는 것이 생명인 그들은 언제나 아이디어를 잽싸게 캐치하고 곧바로 브레인스톰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디자인 디테일에 이유를 따지지는 않는다. 대신 그 빈 곳은 개개인의 직감이 메꾼다.

이런 점에서 나는 스타트업이 잘 맞는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평소 누가 만들어 놓은 예쁜 디자인 키트를 짜집기 하기보다 ‘새 파일’을 만들고 빈 캔버스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창작의 고통을 맛보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또 그들에게 끌렸던 점은, 스타트업의 팀 매니저와의 통화가 항상 유쾌했다는 것이다. 우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모두 신기하게도 유머 감각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었고 말투 곳곳에서 ‘긍정긍정함’이 넘쳤다. 그들과 나눴던 시간은 ‘딱딱하게 면접을 본다’라는 느낌보다 ‘소통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TMI (자신의 강아지가 드디어 똥을 제대로 싼다는 등)를 꺼내서 사람 대 사람으로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는 분위기 만들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길게 하게 만들기보다 그들 또한 자신의 회사와 팀을 소개하는 데 열정을 보였다. 이런 부분에서 이 통화가 ‘합격/불합격 통보를 받는 시험’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임을 느낄 수 있었고, 이 팀의 대략적인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비자 문제가 가장 큰 장벽 

새로운 오퍼는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비자 관련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미국 H1B 비자는 새로운 회사로 직장을 옮길 경우, 이민국에서 최종 승인을 한다. 당시는 또 시기가 좋지 않아서 승인을 받기까지 1년 이상 걸리거나 거부당하는 케이스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승인이 당장 떨어지지 않아도 새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지만, 만에 하나 비자가 거부된다면 그대로 모든 걸 접고 미국 땅을 떠야 했다.

어떤 기업이든 새 직원이 들어오는 데 안전하게 승인을 받기까지 1년을 기다려줄 곳은 거의 없고, 보통은 먼저 입사해서 일할 것을 권유한다. 대기업일 경우 상황이 좋지 않으면 캐나다나 외국 지사로 당분간 발령 보내기도 하지만, 스타트업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비자 문제를 안고 있는 직원 채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디자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회사에서 1・2년을 보내봐야 나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스타트업 중에서도 가장 투자를 탄탄히 받고 롱런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꼬박 4개월 동안 여러 회사와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기나긴 줄다리기에 지쳐 이직을 하지 말까 거의 체념한 상태가 된 그때, 링크드인으로 메시지가 한 통 날아온다.

“좋은 한 주 보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트리플바이트 CEO를 대신하여 연락해봅니다…”

(“Hope you’re having an awesome week. I’m reaching out on behalf of the CEO of Triplebyte…”)

새벽에 일어나 눈을 크게 뜨기도 힘들 시간, (사실 나는 눈이 작아서 크게 뜰 수도 없다) 알림을 보고, 또 고만고만한 회사에서 보냈거니 하고 잠을 좀 더 잤다. 그리고 회사에 느지막이 출근해서 왔던 메일을 다시 찬찬히 읽었다.

“트리플바이트는 회사들을 위한 엔지니어 고용 플랫폼이며 … (중략) … 우리는 당신이 ‘Lead Product Designer’ 롤에 굉장히 잘 맞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년 반 정도의 경력자에게 리드 디자이너? 얘네 진심인가? 라며 반신반의하던 나는 트리플바이트의 투자정보, 경영진, 구성원들의 링크드인 프로필 등을 스캔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