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다_잠시 멈추는 특별한 순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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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그리고 앉아 개미를 구경하다

아주 오랫동안 한 군데를 들여다볼 때가 있다. 특별한 순간이다, 허리를 동그랗게 말아 접고 한곳에 빠져드는 경험은 소중하다.

작년 5월, 나는 전북 진안의 한 명상센터를 찾아가 ‘10일간의 명상 코스’에 참가했다.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고 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명상 코스에는 엄격히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율이 있다. 살생하지 않기(즉, 채식을 한다), 도둑질하지 않기, 어떠한 성적인 행위도 하지 않기(명상센터 내에서 남녀가 철저히 분리되며 신체 접촉이나 시선 교환 등이 금지된다), 거짓말하지 않기, 취하게 하는 물질 하지 않기, 음악 듣기나 일기 쓰기 등의 활동 금지 등등. 

그중에서도 특별한 규율은 열흘간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내면의 고요함이 흐트러지거나, 타인의 수련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이 ‘성스러운 침묵의 시간’은 엄격하게 지켜진다.

 

 

겪어본 적 없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의 첫인상은 어색했다. 낯선 수련생과 통성명 한번, 눈인사 한 번도 하지 못한 채 한 방에서 생활해야 했다. 스무 명 넘는 인원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는데도 소곤거리는 소리는커녕 음식을 씹어 넘기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네, 아니요 등등. 버릇처럼 툭툭 튀어나오는 말들을 애써 삼켰다. 나는 고요 속에서 열흘 밤낮 동안 명상하고,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간소하지만 맛깔나게 차려진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여느 때처럼 마당을 어슬렁어슬렁 돌며 산책을 했다.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 저 멀리서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는 소리 들을 들었다. 반복된 침묵과 명상 덕분에 감각이 예민해진 듯했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촉을 즐기며 걷고 있는데 한 발치 앞에 까만 구멍이 보였다. 다가가 보니 개미굴이었다. 제각각으로 크고 작은 개미들, 수없이 많은 개미가 좁은 구멍을 연신 드나들고 있었다. 들어갈 때는 빈손으로, 나올 때는 모래와 흙을 한 덩어리씩 들고나오는 것을 보아하니 새로운 출입구를 만들고 있었던 듯하다. 개미들은 파낸 흙 조각들을 입구 바깥에 툭 부려놓고는 다시 굴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다음날부터 쉬는 시간만 되면 개미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드나드는 개미를 구경했다. 누가 제일 큰 돌을 들고나오나 혼자서 순위를 매겨보기도 하고, 기껏 옮긴 돌조각이 다시 구멍 안으로 또르르 굴러떨어질 때면 안타까워 발을 구르기도 했다.

내가 개미굴 앞에 붙어있는 지 이틀쯤 되자, 나 아닌 다른 수련생들도 개미굴 앞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저기서 뭘 저렇게 재미있게 보나’하고 와봤다가 나처럼 개미 보는 재미에 빠져든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구멍만 간신히 보이던 개미굴 입구는 점차 화산 분화구 모양으로 커지고 있었다. 

 

 

접혀 파닥이는 책 끝에 흔적이…

명상 코스를 마치고 퇴소하던 날, 우리는 열흘 만에 처음으로 서로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태 몰랐던 각자의 이름을 말하고 들었다. 침묵이라는 규율로 묶여있던 말들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봄날의 수다는 유쾌하고, 다정했고, 찬란했다. 개미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어쩐지 눈이 가서 자꾸만 지켜보게 되었노라고, 명상 중에도 몇 번이고 생각나곤 했노라고, 우리는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우리는 모두 같은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명상을 마친 후 인생이 뒤바뀌거나 단번에 현자가 되지는 않았다. 이전과 다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말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만, 이후로도 종종 그날의 풍경이 생각나곤 했다. 특히 책 끝을 접을 때 그랬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했을 때, 그래서 책장의 한 귀퉁이를 접을 때면 마음이 짜르르 진동하곤 했다. 

 

 

책 끝을 접을 때 우리는 잠시 멈춘다.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 앞에서 허리를 굽힌 채 빠져든다. 타인의 흔적이 벅차서 때로는 가슴을, 때로는 종이 위를 쓸어내리기도 한다. 보물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고, 소리 내어서도 읽어보고, 손글씨로 옮겨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때로는 그 동요가 타인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두 명, 세 명, 여러 명이 하나의 문장 앞에서 멈추어 선다. 같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도 뛸 듯이 기쁜데, 같은 문장을 맘에 둔 사람을 만나면 흡사 영혼의 반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화장기 없는 순한 얼굴로 개미를 바라보던 수련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동안 그저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해치지 않고, 작은 부분도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던 우리들. 계속해서 감동하고 감동하던 그 날의 모습들은 어쩐지 책 끝을 접는 행위와 닮아있다.

얼마 전 장석주 시인의 <마흔의 서재>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하고는 책 끝을 접었다.

“날개 달린 것들은 공중에 떠서 날고, 더위에 지친 날개 없는 것들은 지상에서 고즈넉한 저녁을 맞습니다. 내 안에 있는 노동자도 문설주 아래로 내려오는 초록 늑대거미를 바라보며 고요합니다.”

‘지상에서 맞는 고즈넉한 저녁 풍경’이라니, 눈에 선하다.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마치던 우리들의 모습과 분주한 개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차가운 시골 공기 속에 숄을 두르고 개미굴을 지켜보던 내 모습도. 

세모꼴로 접혀 파닥이는 책 끝을 가만히 어루만져 본다. 내가 오랫동안 바라보고, 멈춰 섰던 흔적이다.

 

1 COMMENT

  1.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기억하고 잘 찾을 수 있게 접는 행위 너무나도 좋습니다 🙂 접는 행위를 통해 좋은 페이지, 좋은 문구를 발견한 뿌듯함이 있어서 좋아요 🙂 저는 주로 접기보다는 밑줄을 긋고 따로 노트에 메모를 해둬요. 아무래도 소장용 책은 괜스레 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가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