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책 한 권은 쓸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글을 계속 쓰세요?”

일 년 동안 두 권의 소설집을 낸 뒤에 종종 들었던 질문이다.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며 오랜 기간 습작을 했다거나, 등단을 목표로 공모전에 여러 번 투고했던 경험도 없다. 그런데도  독립출판으로 혼자 만든 책이 알려져,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작가가 되었으니 숨겨진 비법(?)이라도 있지 않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여러 경로로 질문을 받으며 느낀 공통점은 사람들은 흔히 글을 쓰는 데에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작가님은 어릴 때부터 꿈이 작가셨어요?” 혹은 “회사에 다닐 때도 글을 계속 쓰셨나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기대하는 것과 조금 다른 답변을 해왔다.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한 건 맞아요. 그런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글 쓰는 일에 재능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매일 삼시 세끼를 챙겨 먹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는 일에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지 않듯, 읽고 쓰는 행위도 습관을 들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적인 행동이다. 오히려 오늘이라도, 지금이라도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꼭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못해 깜빡 잊힐 정도로 사소한 일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책 한 권은 쓸 수 있다. 다만 써야만 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써야만 하는 이유 따위는 없다

자, 이쯤 되면 또 궁금할 것이다. 꼭 글을 써야 하나? 글을 쓰지 않아도 사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요?

당신 말이 맞다. 글을 써서 밥 벌어 먹고사는 전업 작가가 아닌 이상 쓰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사람은 없다. 쓰지 않아도 내일은 오고, 수많은 내일이 반복되며 우리의 시간은 죽음 직전까지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엄밀히 따지자면, 글을 꼭 ‘써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해야만 하는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중에서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행복감을 끌어 올리는 일들은 보통 어느 쪽일까?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평소에 읽지 않던 책, 보지 않던 모든 드라마가 다 재미있게 느껴졌던 학창 시절만 떠올려보아도 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향상심 때문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생각보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비싼 돈을 들여 운동을 등록하기도 하고, 어학 공부를 하거나 취미를 하나 더 늘리기도 하고, 월급을 주는 회사가 있음에도 투잡을 뛴다. 나의 삶을 더 나은 차원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는 ‘고양감’, 내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주체성’을 느낄 때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을 느끼지 않고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글쓰기야말로 이 주체성을 느끼기에 가장 쉬운 도구 중 하나이다.

 

알 수 없는 것들에 끌려가지 않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다는 369의 법칙, 그러니까 3년 차, 6년 차, 9년 차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권태기가 3년 차에 심하게 왔었다. 별것 아닌 사소한 일에도 자주 짜증이 났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앉아있지?”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혀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일하다 보면 생기는 문제 상황이나 반대의견, 부정적인 피드백을 맞닥뜨리면 잔뜩 예민해져서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이 아닌, 나라는 사람에 대한 비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루 여덟 시간 이상 매일 머물러야 하는 일터를 증오하면서도 또 같은 장소로 돌아가 반복되는 일을 처리하는 건 고역이었다. 그렇게 평일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한 채 잔뜩 날을 세우고 버티다가 주말이면 잠시 마음을 놓고, 또다시 일요일 저녁이면 다음 날 출근할 생각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예민해지는 상태가 끝도 없이 반복되었다. 

바로 그 시기에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접했다.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은유 작가는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이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후련했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라도 알아내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황유미
프리랜서 작가 | <피구왕 서영> 을 출간했습니다. 글쓰기, 어떻게 시작할지, 어떻게 끝까지 쓸 수 있을지 부딪히며 깨달은 것들을 차차 풀어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