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난다’ 에 ‘왜?’를 붙이니 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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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쓴 글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나열한 일기였다. 글이라기보다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단어를 두서없이 나열한 단어의 모음집에 가까운 형태였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면서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오랜 무력감, 권태, 날카로운 감정을 토해내니 일단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한동안 매일 자기 직전에 그날의 감정을 기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구체적인 언어로 그날 있었던 일을 서술하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종잡을 수 없는 곳으로 널뛰기하듯 튀어 올라 나 자신도 당황스러웠던 감정을 문장으로 정리하기 시작하자 적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에 내 삶이 끌려가고 있다는 불안은 달랠 수 있었다. 감정을 ‘언어’라는 거름막을 이용해 한 번 더 정제해서 서술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둘러싼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바로 이때부터 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랑 에세이가 어떻게 다르길래?

일기나 에세이나 내 이야기를 쓴다는 점은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가 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고 자각한 시점은 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나열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사건에 대한 해석을 덧붙여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 내 일기장에는 온통 하루 동안 내가 느낀 감정이나 사건의 결과만 요약한 거친 단어들이 가득했었다. 예컨대 모든 문장이 ‘짜증이 났다.’ ‘화가 났다.’ ‘참을 수 없었다.’ 식으로 “왜?”라는 질문과 과정은 빠진 채 끝나는 식이었다.

한참 동안 결과만 나열하다 보니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짜증이 났다.’로 끝나는 문장에 “왜?”라는 질문을 붙여 내가 느낀 감정을 주변 상황과 연결 지어 분석하자 문장은 급격히 달라졌다. ‘짜증이 났다.’라는 문장이 ‘급박한 일정 때문에 충분히 시간을 들일 수 없어 기대수준보다 낮은 결과물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니 지친다.’는 문장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나를 괴롭히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감정을 나열하기에 급급하던 기간을 지나, 점차 그러한 감정이 생겨난 원인과 과정을 반추하게 되면서 나의 이야기를 나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성취감 또한 따라왔다.

 

글쓰기, 내 이야기를 나의 언어로 말하는 과정

하루 24시간, 일주일,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아도 때때로 불안하거나 불만이 쌓이는 이유는 대부분 내가 아닌, 외부요인 때문에 나의 인생이 멱살 잡힌 채 끌려가고 있다는 무력감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소속을 둔 거의 모든 집단은 개개인의 특성, 즉 ‘개인성’을 발휘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창작이 곧 삶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때로는 창작이 삶을 되찾는 방법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글쓰기는 표준화된 시스템 안에서 잃어버린 개인성과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도록 돕는 도구이다. 설명할 수 없었던 감정을 나의 언어로 조금씩 구체화하여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개인은 그간 알지 못했던 나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나의 이야기를 찾게 된다. 글쓰기는 시작부터 마침표를 찍어 끝낼 때까지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가장 개인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여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주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에 십상인 삶의 중심을 다시 ‘나’에게로 맞추는 데에 도움을 준다. 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갑작스러운 외부의 변화, 간섭과 개입, 시끄러운 목소리에 덜 휩쓸린다. 삶의 중심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사건에도 조금은 더 의연한 자세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내 이야기를 쓰는 ‘재료’로 써먹어 버리면 그만이라는 자신감이 붙기 때문이다.

 

 

 

괜찮아, 이것도 소재인 걸

독립 문학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벌컥 화를 내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해요. 이것도 소재라고.”

“이것도 소재다.”라는 말은 읽고 쓰는 일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글쓰기의 가장 훌륭한 재료가 결국 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쁜 일 때문에 겪는 부정적인 감정의 변화까지도 훌륭한 글감이 될 수 있다고 위로하면 조금은 덜 두려워진다. 언젠가 이 일을 소재로 삼아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이 언제나 무탈하고 평온하기만 하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예기치 못한 일로 마음이 흔들리고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 쓰는 일이 몸에 밴 사람은 덜 흔들린다. 힘든 일마저도 언젠가 내가 쓰고 있는 책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쁜 일에 파묻히지 않고 빠져나올 힘이 생긴다. 그러니 속는 셈 치고 투자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심지어 돈 드는 일도 아닌데 말이다. 돈 들이지 않아도, 많은 시간을 쏟지 않아도 쓰는 습관은 생각보다 금방 들일 수 있다. 

글쓰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또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쓸 수 있을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것들을 앞으로 차차 풀어내려 합니다. 자,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어서 넘어오세요, 쓰는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