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바꾼 아프리카에서 7년_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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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에서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가요?

아프리카에서 경제 성장력이 가장 안정된 나라 보츠와나, 이곳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은 무엇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 보츠와나 정부 관계자들과 정기적으로 회의를 했다. 이미 보츠와나 정부는 교육 발전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처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부분을 찾는 것이 중요했고, 우리는 그곳을 도와야만 했다.

먼저 국가의 교육 발전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문해율’을 분석했다. 보츠와나 국가 전체 문해율은 90%가 넘는 우수한 결과를 보이었다. 하지만 전국 10개의 행정구역 중 유독 두 지역의 문해율이 현저히 낮았다. 왜 이 두 지역만 70%의 낮은 문해율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이곳은 부시맨들이 사는 보츠와나 칼라하리 사막의 인근 마을이었다. 부시맨? 80년대 영화에서만 들어보던 이름이다. 놀랍게도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 ‘부시맨’이 존재하고 있었다. 부시맨 중에서도 (San), 보츠와나 현지어로는 바쏴라(Basarwa)라고 불리는 부족이 이곳에서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산(San)족은 인류 조상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부족이다. 그러나 왜 이들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이들은 오랜 생존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프리카 다수 부족에게 밀리고, 서양인들에게 쫓겨 지금은 10만 명 남짓한 소수만이 남아있다. 워낙 소수만이 존재하기에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산족은 보츠와나 칼라하리 사막 중심에서 여전히 유목 생활을 하며, 원시 그대로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부시맨과 일하다

우리는 산(San)족이 모여 사는 칼라하리 사막 인근에 있는 마을들을 찾아갔다. 우리와 사업을 함께하는 교육부, 지역자치부, 보건복지부의 각 대표와 함께한 4박 5일간의 출장이었다. 수도 가보로네(Gaboroen)를 벗어나 약 700km를 차로 달리자, 칼라하리 사막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찻길 양쪽으로 우거진 풀들 사이, 어디에 사람이 살아가는 집이 있고 마을이 있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드넓게 펼쳐진 하얀 모래사막 중간에서 얼마나 길을 헤맸는지 모른다. 몇 시간을 달려 사막 한가운데 다다르자 마을이 나왔다. 사막의 중심부에 위치한 중앙 칼라하리 자연보호구역(Central Kalahari Game Reserve-CKGR)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뉴까디(New-Xade)’와 ‘카카에(Kacgae)’라는 마을이었다.

 

칼라하리 사막 동네

 

마을엔 주민이 살기 적합한 유치원, 초등학교, 지역 의회, 성인문해교실 등 기본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가장 먼저 교육 시설을 방문했다. 초등학교를 찾아 담당자들에게 우리 사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사들의 도움으로 ‘부시맨의 후손’들이 모여있는 지역학습센터를 소개받았다. 공립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만 따로 관리하는 학습센터가 따로 필요했는지 궁금했다.

한참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할 나이에 왜 센터에 있는지 물었다. 이 아이들은 정부가 지은 초등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다른 생김새와 다른 언어를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로부터 따돌림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차별과 무시로 한창 예민한 어린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싫어했고, 대체 방안으로 지역학습센터를 오갔다고 한다. 이곳에서 기초 문해 교육부터 산수, 아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예술교육을 받고 있었다. 영어, 세츠와나(보츠와나 공용어)를 배우는 것보다 본인들이 두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는 예술 활동(비즈 공예, 노래, 전통춤, 연극)에 더 적극적이라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 그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

정부에서 마을에 다양한 시설을 준비하고 산(San)족만을 위한 특별한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부시맨의 후손’들은 마을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유롭게 사냥과 채집을 하고, 자신들만의 전통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전통 그대로의 삶을 놓지 못한 그들은 야생으로 돌아가려고 하거나, 농장에 들어가 저렴하게 노동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이 점이 보츠와나 정부가 직면한 큰 문제점이었고, 정부는 임시방편으로 아이들만이라도 마을에서 살게 했다. 그 결과, 내가 만났던 몇 명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었다.

마을을 거부하던 그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모습을 보며,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어쩌면 누군가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족 아이들을 위한 지역학습센터

 

초원을 자유롭게 누비는 것이 행복인 이들에게 과연 공부를 한다고 한들, 이들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교육을 받았더라도 이들은 또 다른 문제와 부딪힌다. 산(San)족을 낮은 계층이라 여기고 심지어, 동물 취급까지 하는 바츠와나(보츠와나 정서)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어울릴 수 있을까.

사회의 시선과 편견, 그리고 가난 때문에 이들이 교육에 무관심한 것은 어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산(San)족이 정말로 원하는 교육이 뭔지 듣고 싶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가족 단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