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다_다른 사람을 경험하다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라는 말이 있다. 극 중 인물과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적 연기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로, 쉽게 말하자면 연기할 때 배역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연기 방법이다. <배트맨>에서 조커를 연기한 잭 니콜슨, <악마를 보았다>에서 살인마 역을 맡았던 최민식, <레버넌트>의 디카프리오나 톰 하디를 보며 관객들은 엄청난 몰입의 순간을 경험한다. 마치 빙의라도 된 듯한 이들의 연기는 때로는 경이롭고, 때로는 위태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고도의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을 보며, 나는 종종 궁금해하곤 했다. 다른 누군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타인이 되려면 우리는 얼마나 큰 집중력과 집요함을 가져야 하는 걸까? 나 같은 일반인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그들과 이야기하는’ 메소드 독서

16세기 사상가이자 군주론의 저자로 잘 알려진 마키아밸리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마키아밸리는 책을 읽을 때 책의 저자에게 어울리는 의상을 갖춰 입고 읽곤 했는데, 저자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그들과 이야기한다네.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묻지. 그러면 그들은 친절히 대답해 준다네.

자칫 기괴해 보일 수 있는 이 행위는 마키아밸리가 독서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책을 읽으며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고, 저자 혹은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고, 그 속에서 지루함, 괴로움, 가난, 죽음을 모두 이겨냈다고 고백하고 있다. ‘메소드 연기’뿐만 아니라 ‘메소드 독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마키아밸리 정도는 아니더라도, 소설책을 읽을 때면 가끔 엄청난 몰입을 경험할 때가 있다. 김애란 작가님의 단편 <물속 골리앗>을 읽을 때는 나를 둘러싼 공기가 온통 축축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벌레들>을 읽을 때는 온몸이 간지러워 여러 번 몸서리를 쳤다. 이 단편에서 저 단편으로 넘어갈 때면 책장을 덮고 한참 쉬어야 했는데,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를 읽은 날에는 저녁상에 오른 소고기에 눈살이 찌푸려졌고, 산책하다가 큰 나무 곁에 한참을 뿌리내린 듯 서 있기도 했다. 소설을 보며 울고 웃을 때가 많았다. 화를 내고, 역겨워하고, 억울해하고, 망연자실할 때도 많았다. 그 감정에서 벗어날 때쯤이면 이런 의문이 들었다. ‘몰입’의 감정은 실체가 있는 경험일까? 아니면 단순히 ‘몰입의 기분’을 의미하는 걸까? 

2019년에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책들 가운데 하나인 매리언 울프의 저서 <다시, 책으로>에서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실험 이야기가 담겨있다. 에모르 대학교와 요크 대학교의 신경과학자들은 ‘글을 읽을 때 우리 뇌 속의 뉴런이 어떤 식으로 활성화되는지’를 연구했는데, 실험팀에 따르면 촉감에 관한 은유적인 표현을 읽을 때는 촉각을 담당하는 뉴런이 활성화되고, 움직임에 관한 글을 읽을 때에는 운동 뉴런이 활성화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다시, 책으로>의 작가 매리언 울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니 우리가 에마 보바리의 실크 스커트에 관한 구절을 읽을 때는 촉각 영역이 활성화되고, 에마가 변덕스러운 연하의 연인 레옹을 쫓아가려다 마차에서 굴러떨어지는 대목을 읽을 때는 촉각 영역이 활성화되는 동시에 숱한 감정 영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겠지요.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과정을 포함한다

소설의 주인공을 따라 도미노처럼 활성화되는 내 머릿속의 뉴런들을 상상해보니 즐거웠다. 박완서 선생님의 <그리움을 위하며>를 읽을 때는 어땠을까? 맑고 시원한 ‘사량도’의 모습을 떠올릴 때는 시각을 담당하는 뉴런에 파란 불이 켜졌겠지?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을 읽을 때는? 미각을 담당하는 뉴런과 불안감을 담당하는 부분이 활성화됐을까? 흥미로운 실험 결과 앞에 나는 내 머릿속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사실 인간은 타인의 이야기에 그다지 ‘잘’ 귀 기울이는 존재는 아니다.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을 대화하기 싫은 유형의 사람 1순위로 꼽기도 하고, 일명 ‘투 머치 토커’를 보면 학을 떼고 달아나기도 하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인 책에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독서’라는 행위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을 필히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전보다 더 크고 넓어진 ‘나’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책으로>의 저자 매리언 울프는 신학자 존 S.던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신학자 존 S.던은 읽기 안에서 이런 뜻밖의 만남이 일어나고 타인의 관점을 취하게 되는 것을 ‘옮겨가기’라고 불렀습니다.

“옮겨가기는 결코 완전하지 않으며, 언제나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다. 거기에는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역방향의 과정이 있다. (존 S.던)”

세계에 대해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관점에서 타인의 관점으로 옮겨갔다가 더욱 확장된 상태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아주 적절히 묘사한 구정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아 바깥에 있는 것들에 가닿으려는 시도이다. 인간은 결코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지만, 그래도 이해와 공감에 게을러지지는 않으리라는 집요한 의지와 노력을 가지고 있나 보다. 책을 읽는 내내 쉴 새 없이 활동할 내 머릿속 뉴런들을 상상해보니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어쩐지 따듯하고 포근한 불빛을 뿜어낼 것만 같다. 잠시 타인이 되어 그의 삶에 빠져들고, 또 되돌아 나오며 자아의 외연을 넓히는 행위라니! 메소드 연기만큼 경이롭게 느껴진다. 독서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많고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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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크리에이터 | 유튜브 채널 을 운영하는 북 크리에이터입니다. 북 멘토, 독서 관련 전시 큐레이터, 강의 등 독서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1 댓글

  1. 책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많은 집중력과 이해력이 필요한 것 같아서 참 어렵고 숙련이 필요한 행위인 것 같아요 🙂 저는 장편소설을 선호하는데 장편소설 등장인물들에 몰입해서 나름 스토리에 들어가서 읽기가 가능한 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읽기에 급급해 들어가는 행위까지 가는 책들이 많지는 않아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