꽂다_책장은 추억여행의 사진첩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누가 했더라. 찾아보니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이 남긴 말이라고 한다. 이 명언은 내가 자주 되새기는 말 중 하나다. 특히 30대가 되고 나서부터는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을 집요하게 뜯어보는 일이 잦아졌다. 얼굴에 심술이 배지는 않았는가, 욕심과 이기심이 들러붙지는 않았는가 살펴보게 된다. 요즘에는 내 얼굴이 부쩍 ‘억울한’표정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아서 내가 과도한 피해 의식을 가지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남 탓을 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틈틈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몇십 년간 축적된 과거가 고스란히 자국을 남기는 공간, 풍화되어가고 있는 얼굴은 흥미로우면서도 두렵게 느껴진다.

 

옛날의 나는 무엇에 골몰했을까

과거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마음이 싱숭생숭한 날 괜스레 지난 일기를 들춰보는 일, 서랍에 넣어둔 오래된 손 편지들을 뒤적여 보는 일도 지난 시간을 살펴보는 방법 중 하나다. 오래된 카톡 메시지 창을 열어보는 일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피드를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며 구경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화룡점정은 역시 때 지난 사진첩을 꺼내보는 일이다. 과거는 사진과 함께 순식간에 현실로 밀려들어온다. 젊은 시절의 엄마, 사탕목걸이를 두르고 생일잔치를 하는 나, 그때는 자주 갔지만 지금은 없어져 버린 남산 동물원, 단종된 아이스크림, 유행하던 요술봉 장난감… 과거에 향유했던 모든 경험, 모든 기억이 넘실넘실 현실 세계를 떠돈다. 

 

 

한 번은 엄마 집에 가서 오래전 외장 하드에 옮겨둔 핸드폰 사진들을 열어보았다. 2000년대 유행했던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친구들을 보며 경악하기도 하고(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게 촌스러운 애가 바로 나다), 이제는 왕래가 없어진 동기들을 오랜만에 떠올려보기도 했다. 과거에 만났던 남자친구들도 틈틈이 등장해 나를 놀라게 했다. 모든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시절의 나는 이랬구나. 곱슬기를 애써 눌러 가라앉힌 애매한 머리를 하고, 어정쩡한 길이의 치마를 입고, 피아노 앞에 두꺼운 악보를 올려놓은 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 이 애가 바로 나라니. 거듭 신기하고, 부끄럽고, 애틋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제대로 추억여행이나 하자 싶어 책상을 여기저기 뒤져보았다. 서랍에서 구남친의 편지와 남편의 편지를 동시에 발견했고(엄청나다!), 얼마 전까지 소중히 모으던 무민 굿즈들도 발견했다. 

우연히 시작된 추억여행은 예상치 못하게 책장에서 절정을 향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과거의 관심사를 고스란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옛날의 나는 무엇에 골몰해있었을까. 보기 삼아 몇 가지만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왼쪽 최상단 칸 : 고대 이집트 역사에 한참 빠져있었음을 보여주는 칸이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 <빛의 돌>같은 소설책들과, 다 읽지도 못한 <이집트 사자의 서>, <이집트로 가는 길> 등의 책이 꽂혀있다. 고대 이집트 여왕의 이름을 딴 글자 nefer를 아직도 아이디로 사용하고 있고, 아누비스나 오벨리스크 모양의 타투를 하고 싶은 것을 보면 이집트 사랑은 현재 진행 중인 듯하다.

 

오른쪽 두 번째 칸 : 국내에 번역된 파울로 코엘료의 모든 책들이 꽂혀있다. 코엘료는 나를 본격적으로 ‘책덕후’로 만들어준 작가다.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그 시절의 나는 영혼과 사랑의 힘을 믿었다. <브리다>를 읽으며 나의 소울메이트가 반드시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믿었고, <순례자>나 <연금술사>를 읽으며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리라 확신했다. 그 때문일까, 사실 나는 아직도 운명과 영혼을 믿는다. 

 

왼쪽 세 번째 칸 : 스무 살 무렵 읽었던 일본 소설들이 모두 모여있는 칸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 압도적으로 많이 꽂혀있다. 그 무렵 내가 친구들과, 애인들과 주고받았던 대화들을 떠올려보면 내 말투가 일본 소설의 번역체와 많이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좋게 말하면 감성적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좀 오글거렸다는 뜻이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욕조 목욕을 즐겼고, 어린 나이에도 자주 권태로움을 느꼈다. 나를 ‘나의 들판(la mia campagna)’라고 불러주는 듬직한 애인이 생기길 꿈꿨고, 늙어서는 크고 고풍스러운 원석 반지를 내 몸처럼 늘 끼고 다니는 우아한 할머니가 되길 꿈꾸기도 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인물들이 그러하듯.

 

왼쪽 마지막 칸 : 그야말로 온갖 장르의 책들이 모여있다. 열심히 사 모으던 무민 코믹스, 친환경 비누를 만들어 보겠다며 샀던 수제 비누 만들기 책(물론 못 만들었다), 그 옆에 자매품처럼 놓인 아로마 향초 만들기 책 (역시 못 만들었다), 내 운명은 내가 직접 점치겠다며 열심히 공부하던 타로카드 책, 첫 해외여행을 갈 때 들고 갔던 캄보디아 여행 가이드북 등 그야말로 ‘취미생활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칸이다. 새로운 것들을 꾸준히 시도했고, 꾸준히 실패했다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오른쪽 마지막 칸 : 대학시절 전공했던 음악에 대한 책들이 모두 모여있다. 닳고 닳도록 봤던 백병동 화성학 책, 시창청음책, 제본한 리얼북, 발성법 책, 락의 역사가 담긴 뉴스위크 잡지 등등. 음악을 그만두고는 좀처럼 펴보지 않아 대부분 남의 책처럼 생소하게 느껴졌다.  

 

나는 미래의 책장을 기대한다

책장을 바라보고 선 채, 나는 과거와 현재를 바쁘게 오갔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열심히 쫓았는지, 그중 어떤 것들이 남았고, 어떤 것들이 휘발되었는지를 가늠해보았다. 어떤 것들이 변했고, 어떤 것들이 변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했다. 책장 속에 꽂힌 책들은 마흔이 넘은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솔직하고, 외장 하드에 남아있는 사진들만큼이나 선명하게 나의 과거를 드러내주고 있었다.   

나루케 마코토의 책 <책장을 정리하다>의 책 소개를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책장은 그저 책을 꽂아두는 가구가 아니다. 한 사람의 과거와 통하게 해주고 현재를 반영하며 미래까지 가늠하게 해주는, 매우 사적이고 기록적인 동시에 역동적인 공간이다. 취향이나 취미부터 관심사, 직업까지 모두 책장을 통해 드러나고, 또 책장이 변화시킬 수 있다.

나는 과거의 책장을 바라보며 미래의 책장을 기대한다. 마흔이 되면, 어쩐지 거울을 들여다보며 보내는 시간만큼 책장을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과거는 얼굴에도, 책장에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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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1. 종이책이 가득 꽂힌 책장은 바라만봐도 넘나 좋은 것 같아요 🙂 이만한 디자인이 또 있을까 싶어요 🙂 아직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도 다양하고 좋은 책들을 꽂고 싶어요 🙂 물론 그 전에 공백님께서 알려주신 책을 고르고, 책을 펼치고, 좋아하는 페이지를 접으며 책을 읽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