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써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아무거나 써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글쓰기 모임 첫날,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태껏 글을 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막상 글을 쓰려니 뭘 써야 하나 막막하다는 것이다. 책방에 모여 한 시간 반 동안 각자 쓰고 싶은 글을 쓴 뒤에 그날 어떤 글을 썼는지 간략히 나누고 헤어지는 모임이었다. 서로 글을 읽고 날카로운 평가를 주고받는 합평을 하는 모임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글을 쓸 때 느끼는 어려움에 대하여 솔직한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다.

 

“저도 쓸 게 없어서 오늘은 일기나 쓰려고요.”

“저는 그냥 어제 화가 났던 일을 썼는데, 별것 없는 이야기라 공유하자니 부끄러워요.”

  

사람들은 “이렇게 사소한 일을 써도 되는 걸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무엇을 쓸지 소재를 정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막막해한다. 내가 겪은 이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을 써 봤자 ‘TMI’만 남발하는 꼴이 되는 게 아닐까 걱정한다. 이런 것도 소재가 될까? 의심하다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접고 만다. 하지만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거나 써도 아무 문제 없어요!

소소한 소재일수록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시작이 쉬워야 재미를 붙일 수 있다.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의미 없던 일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노트북 앞에 앉은 지금, 당장 생각이 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아무거나 써도 아무 문제 없다.”라는 문장을 주문처럼 되뇌면서.

시작은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나열하는 것이라 해도 좋다. 혹은 지금 생각이 나는 한 장면이나 감정도 좋다. 그게 무엇이든, ‘지금’ 가장 쓰고 싶은 말을 첫 문장으로 시작하면 대개 하고 싶은 말이 계속 생각이 나기 때문에 문장을 연이어서 쓰기에 좋다. 그래도 몇 분 동안 주저하고,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면 빈칸 채우기부터 시작해보자. 쓰고 싶은 주제가 아무것도 없는 날이면 나는 주로 오늘 하루의 ‘첫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이다. 아래 문장의 빈칸을 채워 넣는 것으로 일단 한 걸음을 떼어보는 건 어떨까?

  1)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__________ 을 했다.

  2) 집 밖으로 나가니 날씨가 __________ 했다.

  3) 첫 끼니로 __________ 을 먹었다.

 

재료를 찾아 돌아다니기

아무거나 써도 된다고 스스로 잘 토닥여가며 일단 시작하는 데에 성공했을 수도 있지만, 정말이지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은 도저히 쓰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회사에서 종일 업무에만 시달려서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다거나, 집에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본 기억밖에 없어서 그런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가는 자괴감에 빠질 것 같다거나. 일상이 곧 재료라고 했지만, 재료가 요리사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에는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재료를 찾으면 그만이다.

그럴때면 일단 바깥으로 나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적어보자. 관찰한 것들을 기록하는 방법은 여러 작법서에서도 추천한 바 있다. 탁 트인 공원이나 산책로 같은 곳도 좋고, 집 앞 카페나 유동 인구가 많은 상점같이 짧은 시간 내에 여러 사람을 관찰할 수 있는 실내 공간도 괜찮다. 밖으로 나가 부지런히 눈에 보이는 풍경을 옮겨 적자. 화가가 연필 하나를 든 채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거칠게 스케치하듯, 휴대폰을 들어 메모장이라도 켜서 보이는 그대로 쓴다.  문장의 호응이나 완결성 같은 것들은 생각하지 말고 관찰한 것을 최대한 그대로 옮기는 일에만 집중한다.  어차피 메모장은 나만 본다. 아무도 검사할 사람이 없으므로 나중에 나만 알아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언제든 필요할 때 열어서 재료를 꺼내 쓸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이 적어본다.

집 앞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며 메모장에 적은 것 중 일부를 옮겼다.  산삼수를 팔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시식용 종이컵을 내미는 할아버지, 벤치 하나를 다 차지한 채 드러누워 휴대폰 게임을 하는 사람, 휴대폰에서 울려 퍼지는 게임 배경음악과 효과음이 시끄럽다, 왜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 거지?, 대충 벗어둔 슬리퍼가 벤치 밑에 널브러져 있고, 하얀색 푸들이 싼 똥을 치우는 주인, 킥보드를 밀고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질주하는 남자아이와 그 뒤를 황급히 뒤쫓아가는 남성 .

다시 집에 돌아오면 메모를 확인하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사람 하나만 꺼내보자. 직관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을 고른다. 보통 메모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대상이다. 예를 들어 나의 메모에서는 벤치에 드러누워 이어폰도 사용하지 않은 채 게임을 하는 사람과 관련된 설명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휴대폰에서 나오는 소음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던 기억이 소재가 될 수 있다.

 

황유미
프리랜서 작가 | <피구왕 서영> 을 출간했습니다. 글쓰기, 어떻게 시작할지, 어떻게 끝까지 쓸 수 있을지 부딪히며 깨달은 것들을 차차 풀어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