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일단 시작은 했는데, 그다음은요?

시작보다 어려운 ‘마의 구간’이 찾아올 때

하루 15분이라는 시간을 정해놓고, 혹은 500자만 쓰자고 마음을 먹은 뒤 매일 꼬박꼬박 쓰다 보면 금세 백지를 앞에 두고 머리가 하얘지는 글쓰기 공포증은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일단 빈 페이지를 열어 쓰기 시작하는 일에는 익숙해졌을 무렵, 반드시 극복해내야 하지만 시작보다 더 어려운, ‘마의 구간’이 찾아온다. 시작한 글을 계속해서 이어서 쓰고 마침내 끝맺음하는 단계 말이다. 사실 많은 사람이 시작은 해도, 끝까지 가지 못해서 아예 글쓰기 자체를 중도에 포기해버리고 만다. 시작은 단계적으로 습관을 들이면 할 수 있지만, 끝내는 일에는 그보다 더 많은 역량이 복합적으로 필요하다. 그중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시작한 이야기는 내가 완결 내고 만다는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씩 매일 단 15분이라도 쓰다 보면 긴 글을 쓸 수 있을 만한 재료, 그러니까 글감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쌓인다. 글감이 쌓인 것도 매우 뿌듯한 일이지만 글감은 글의 재료이지 글은 아니다. 스치는 생각이나 단상을 가볍게 기록해둔 글감에서 힌트를 얻어 이제는 글을 쓸 차례이다. 아무리 재료를 쌓아 두더라도 완결된 글을 쓰는 버릇을 들이지 않으면 시작만 하고 마무리는 짓지 못하는 뒷심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자괴감에 빠지기 쉽다. 그러니까 글감이 어느 정도 쌓이면 하나씩 잡아 반드시 완결된 글로 마무리를 짓는 연습을 해보자. 내가 생각해낸 글감이니, 내가 완결을 내야만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서라도.

 

‘시작한 글’과 ‘끝난 글’ 구분해서 관리하기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 사실은 끝맺지 못한 채 쌓아둔 글감이 끝까지 쓴 글보다 많다. 한두 문단 정도만 써놓은 뒤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글이라 할지라도 낱개의 파일로 파일명을 따로 지정하여 저장해두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쓰지 못한 채 중단한 글이라고 해서 당장 삭제하거나, 한 파일 안에 글감을 다 몰아넣어 저장하는 방법 대신 비록 한 문단만 쓴 글이라고 해도 소재에 따라 파일명을 달리해서 저장해두는 방법을 쓰는 이유는 앞서 말한 ‘책임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며칠이 지나면 파일이 수북이 쌓이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벌여 놓기만 하고 수습하지 않는 사람인지 단번에 깨닫게 된다. 글감 파일이 일자 별로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 걸 지켜보면서 완결을 하지 않은 이야기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정신이 번쩍(?) 들게 되는 이른바 충격 요법인 셈이다.

폴더명을 아예 ‘완결’과 ‘글감’으로 나누어 파일을 관리하면 더 효과적이다. 내 컴퓨터의 ‘글감’ 폴더에는 소재가 생각이 났을 때 그때그때 몇 문단, 혹은 몇 문장만 적은 뒤 일단 저장을 해둔 짤막한 글이 여러 개의 워드 파일로 쌓여있다. 글감에 넣어둔 글이 완성될 때마다 ‘완결’ 폴더로 옮긴다. 완결 폴더는 프로젝트별로 [단행본], [청탁원고], [개인 작업]으로 나누어 폴더를 관리하는데, 완성된 글이 세상에 나갈 때마다 [출간], [업로드] 파일명에 반드시 종료됐다는 표기를 해서 끝난 글에는 확실히 ‘끝’이라는 라벨을 붙인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일의 상태에 따라 파일명에도 ‘진행 중’인 상태인지 ‘완료’된 상태인지 표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진행 중인 일들을 빨리 마무리해서 종결시키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일단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장벽에 가로막힌 듯 더 나아가지 못할 때도 잦다. 쭉쭉 진도를 나가다가 갑자기 막혔던 순간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 였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상황에도 두 가지 경우가 있다. 글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막상 쓰다 보니 ‘정말 그게 맞아?’라는 의문이 들거나, 일단 시작만 하면 길이 보일 거라 믿으며 썼더니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없네?’라는 난관에 봉착하거나.

그럴 때 곧바로 글쓰기를 중단하고 폐기해버리면 ‘빠른 포기’가 곧 패턴이 되고 만다. “아, 이번 글은 망했네.”라며 포기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글을 시작하기 전에 하고자 하는 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두고 시작하면 도움이 된다. 이른바 ‘주제’를 딱 한 문장으로 요약만 해두더라도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참고할 만한 이정표가 되어준다.

그러나 꼭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나서야 글쓰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재미있는 소재부터 생각이 날 수도 있다. 혹은 머릿속에 아주 강렬한 장면이 스쳐 지나가서 글을 쓰고 싶어지거나,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는데 하고 싶은 말 한 문장을 요약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지칠 수 있으니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을 때는 하고 싶은 말은 없더라도(지금은 모르더라도) 일단 시작해보자. 그럴 때는 대신 중간에 질문을 더 많이, 적극적으로 던져야 나조차 몰랐던 생각을 끌어내고 주제를 찾아낼 수 있다.

“왜?”, “그래서?”, “어떻게?”라는 질문은 글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게 만든다. 하고자 하는 말이 정리되지 않고 주변부에서만 맴도는 것 같을 때도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그 누구도 나의 사유, 생각의 흐름에 개입할 수 없으므로 더욱 질문은 중요하다. 내가 아니면 내 이야기를 궁금해할 사람도 없다. 추상적이거나 모호한 언어를 되풀이하다 보면 글자 수는 채울 수 있어도 종국에는 “그래서 내가 뭘 말하고 싶었던 거지?”라는 질문에 끝내 답을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글을 잡고 시작을 했으면 “에라, 모르겠다.”라며 생각을 유예하지 말고 질문을 던지자. 자문자답하는 과정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찾게 된다.

 

황유미
프리랜서 작가 | <피구왕 서영> 을 출간했습니다. 글쓰기, 어떻게 시작할지, 어떻게 끝까지 쓸 수 있을지 부딪히며 깨달은 것들을 차차 풀어내려 합니다.